광주미연(특별호)
‘작가와 전시’1 – 김진화편
이세길(미술평론)
나는 그의 전시를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쓴다. 물론 그와 어떤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그가 제공한 몇 가지 자료만을 근거로 이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수많은 인식의 공간을 떠돈다. 저마다 다른 그 결들의 중첩 속에 삶의 총제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상징의 기호들이 있다. 화가는 그 기호들을 끄집어내어 붙들고 다듬어 나름대로 지어낸 미적 공간을 유영(遊泳)한다. 김진화 공간은 전통적인 회화 공간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듯 보인다. 그에 관한 시도는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이 되어 있다. 그런 만큼, 김진화가 생성한 공간 속의 image(형상)들은 대체 ‘무엇’과 상호작용을 하려는지 적어도 내게는 미지의 상태이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김진화의 시선은 관객을 ‘마치 혈관 속’에 있게 하듯, 대단히 미시적으로 펼쳐진다. 자신의 내면에로 힘차게 돌진하는 힘을 그의 짧은 메모에서 감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미줄에서 ‘소우주’를 발견했다니, 대단한 자기 성찰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관찰’등속의 이성적 포커스로 어찌 그런 발견이 가능하겠는가). 자신의 작업 출발지점이 자연 그 자체임을 드러내는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는 ‘내적 사유 또는 욕망의 거대한 공간’이 압박하는 한계 속에서 숨구멍 찾기를 시도하는 예술인만의 당연한 의지가 읽힌다. 그럼에도 김진화가 설정한 공간이 존재하는 공간의 인식은 어떠한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인식은 곧바로 ‘바로 그 자리에만 존재하는 공간’을 지시하는 것은 아닐 터이므로 김진화의 미시적 공간(인식)론이 적잖이 궁금해진다. 이 난감한 물음을 풀어 줄 작가의 텍스트를 읽고 싶다.
작품과 관객 사이의 양방향 교류, 그 아름다운 상호작용은 작가의 꿈이다. 김진화는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에 접근해 획득할 상상 가능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관객들이 맞닥뜨릴 미답(美䠌)의 공간을 소요하며 누릴 자유, 그 무한한 내면의 길을 한없이 걷도록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관객 저마다의 오감을 무한히 발산하며 체감할 ‘느낌’, 바로 그것이 작가가 고귀하게 생각하는 어떤 완성의 전형이라 한다면, 대단히 여유있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내면의 떨림을 유도하는 공간의 무수한 형상들, 그 떨림을 유도하는 공간의 무수한 형상들, 그 떨림으로 확인하는 ‘나’라는 존재의 그윽한 향기, 존재의 자기인식을 가능케 하는 사고의 신비한 심연.. 김진화의 작업이 구상하는 큰 얼개(담론)는 대개 이런 수준인지 궁금하다. 그저 자유이고, 상상이고, 느낌이고, 고귀하며, 완성이라는 식으로 <공간 속의 그림그리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화 -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여행
김희랑 _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예술가의 특권은 무엇일까? 혹자는 고통스럽지만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는 창조활동이라고 하고, 혹자는 금지된 것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라고도 말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무한한 상상력의 자유로운 표현 아닐까? 예술가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잠을 자지 않고도 꿈을 꾸는 사람이다. 존재하지만 감각적인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생각이나 상상력의 산물은 예술가에 의해 이미지화된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의 세계까지 표현해 내는 것이야 말로 예술가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김진화의 작품을 보면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된 추리소설이나 알쏭달쏭한 그림동화를 읽는 기분이 든다. 건축적 구조물이나 정방형의 무늬가 가득 찬 복잡한 배경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과 사물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는 그녀의 작품은 퍼즐 맞추기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온갖 생각과 지식을 총동원하게 만든다. 따라서 왠지 비밀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렵다.
김진화는 별자리, 사물이나 건축물의 형태, 정방형, 낙서와 같은 드로잉에 관심이 많다. 그녀에게 별자리는 곧 꿈과 이상을 의미한다. 별은 어두운 밤하늘의 작은 빛이지만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고 더욱 반짝거린다. 사는 것이 힘들면 힘들수록,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간절하듯이... 또한 사물이나 건축물의 형태나 정방형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성격과 관계가 깊다. 어려서부터 항상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서 항상 어떤 구조물을 보면 모서리와 모서리를 연결해 가상의 선을 그어본다거나 칸을 만들어보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생각이 많고 꿈이 많고 논리적이며 부지런한 사람이다. 또한 시와 음악을 좋아하고 책읽기가 취미이다. 어쩌면 우리가 화가하면 떠올리는 모습보다는 모범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최근 김진화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사물이나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서 인간내면의 정신적‧ 심리적인 측면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특히 책과 음악, 여행 등을 통해 얻은 영감이나 감동과 사색 혹은 인간내면의 다양한 심리상태 즉 불안, 집착, 욕망, 이상과 꿈, 갈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각화에 관심을 갖고, 사물과 건축구조의 공간적 재구성 위에 신화적․역사적․문학적 알레고리를 끌어들여 시나 소설을 쓰듯 그림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알레고리를 차용하는 근저에는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정연하고, 동기와 이론적 체계를 중시하는 작가의 성향이 깔려있다. 작품 <상상적 추락>을 예로 들면 반복되는 원형계단에서 추락의 이미지를 발견해 내고, 말을 타고 추락하는 비너스와 새와 물컵 속의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삽입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이자 미의 탄생을 상징하는 비너스가 추락한다는 것은 근원적인 것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상황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김진화가 만들어낸 화면 안에는 사물의 구조가 가진 시각적 착각(환영)과 작가의 심리상태간의 절묘한 교차가 이루어지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긴밀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김진화의 그림은 자신의 시각적 심리적 체험의 개별적 특성을 유형화하고 그것을 알레고리화하거나 상징화하기 때문에 비밀스럽고 주관적인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 상징의미를 지닌 알레고리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공통적이고 보편적 심리상태가 적용될만한 내러티브를 획득한다. 이밖에도 김진화의 작품은 몇 가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계산되어진 일정한 질서와 반복적 이미지의 사물이나 건축구조물이 가진 기계적이고 건조한 특성 위에 내러티브를 지닌 신화나 정신분석학적 상징체계들이 도입됨으로써 김진화의 그림은 서사적 구조로 환치된다. 즉 그녀의 그림은 지적이고 직관적인 반면 감성적이고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또한 전통적(신화적․철학적․문학적) 기반을 지닌 알레고리와 작가가 만들어낸 상징적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나 등장 이미지가 갖는 전통적 의미 이상의 해체적이고 다양한 열린구조로 해석이 가능하다.
형식적인 면에서 여러 장의 판넬을 겹치는 방식이나 복잡한 구조물의 배경은 그림을 암호화하고 상징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즉 겹쳐진 판넬 장치나 창문, 반복된 계단 등은 들여다보고 그 안으로 빨려들게 하는 요소가 되어 때로는 판타지의 세계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심리적‧정신적 내면의 세계 혹은 보이지 않은 세계로 안내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내가 만난 그녀는 작은 체구로 온몸과 마음을 불살라 다소 힘들고 머리 아픈 작업을 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정작 스스로는 창작활동 자체를 그저 즐긴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가 싶다. 김진화는 살아가야 할 날들 동안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담겨있는 보물들을 하나씩 발견하여 그것들을 조형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조용히 진지한 자세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진화를 보며 내성적이고 착실하고 이성적인 사람의 열정은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며 감정표현에 적극적인 사람의 열정보다 훨씬 더 뜨겁고 깊다는 생각을 해 본다.
Journey of Invisible World
Kim, Hee-rang, curator of Gwangju Museumof Art
What is the privilege of artist? Some said it is a creative activity which is painful but feels a secret pleasure and other said it is a free approach to something forbidden. There may be various opinions; but I think it is a free expression of infinite imagination. Artist can dream without sleeping with infinite imagination. By-products of nonexistent idea or imagination in sensible from become image by artists. So expressing invisible world as well as visible one may be artist’s privilege.
Kim, Jin Hwa’s works make us feel reading a mystery story composed by writer’s infinite imagination or vague picture story. Achitectural structures or arrangement of people and objects from fairy tale in complex background filled with square patterns make us mobilize all kinds of ideas and knowledge like puzzle or riddle. So, her works are somewhat secret and interesting, but frankly difficult to understand.
Kim, jin Hwa has much concern in constellation, square and drawing like scribbling. Constellation means dream and ideal to her. Star is a small light in dark sky, but it is seen well and shines more as it is darker… Her interest in objects, architectural forms and square is closely related to her character. She has a long habit to draw imaginary lines or make a section by connecting edge and edge when she saw a structure and it was because she had a kind of obsession. Now she thinks hard, is logical and diligent. She also likes poem, music and books. She is like a model student rather than artist.
Kim, jin hwa is immersed in finding out an association with mental and psychological aspects of human beings from visual objects or architectural forms and structures. In particular, she has interest in the visualization of invisible world like the inspiration, emotion and thinking from books, music and journey or the various mental states including anxiety, attachment, desire, ideal, dream and conflict and makes a picture story like writing poem or novel by drawing mythological, historic and cultural allegory on the spatial recomposition of objects and architectural structures. Her borrowing of allegory is based on her disposition that gives priority to logical and rational motive and theoretical system rather than emotional. For instance, her work “imaginative Falling” discovers the image of fall from descending stairs repeatedly and inserts the scene that venus with wings and water in cup fall. The fall of venus symbolizing the birth of life and beauty means that of something essential and suggests the situation that everything is confusing not to advance further. There are delicate crossing between visual illusion that structure of an object has and artist’s mental state within the canvas made by Kim, jin hwa and close tension between visible and invisible things.
Kim, jin hwa’s painting look like secret and subjective landscape because she typifies individual characteristics of her own visual and psychological experiences and makes them allegory or symbol. But since she presents allegories having the meaning of universal symbol, she gets narrative that mental state is applicable. Besides, her works has some double character. Mythology or psychoanalytic symbol system are applied on calculated regular order, objects of repetitive image and mechanical and dry characteristics of architectural structures and then her paintings are replaced to epic structure. Her paintings are intellectual and intuitive, but mobilize emotional and infinite imagination. In addition, since her works are mixed with traditional(mythological, philosophical and literary) foundation and symbolic images made by artist, it can be interpreted as dismantled and various open structures beyond traditional meanings of artist’s intention or image.
Method of folding several panels and background of complex structures act as the devices of encoding the painting and maximizing the symbol. That is, folded panel device, window and repetitive stairs become the factor which make audience absorbing and looking into their inside and lead them to the world of fantasy or play the role of guiding mental and psychological world or invisible world.
She who I met has small physique and seems to struggle with hard works, but she said she enjoys creative working itself. She discovers treasure in invisible world one by while she is alive and wants to make them art form. I think that the passion of introspective, good and rational character is hotter and deeper than of those who are active and impromptu in expressing their own emotion.
내면의 투시경, 그리고 초월의 감각 연습하기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1.
김진화의 예술이 다루는 세계는 언제나 인간의 지식과 대화의 중심을 차지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잘 밝혀지지 않고 있는 세계다. 그곳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생각들의 출처다. 그곳은 (우리가 자주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경험과 언어가 적절하게 버무려지곤 하는 빈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의지로 통제되거나 조절되지 않다. 오히려 그곳의 실체가 의지와 감정을 조정하고 생각을 통제한다. 히포의 어거스틴을 빌자면, 그곳이야말로 존재의 실체적 중심이다. 김진화의 작업은 바로 이 내면의 실체를 탐색하는 것이고, 그로 향하는 단계들을 밝히며 경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김진화의 작품들을 대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의 김희랑은“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의 세계까지 표현해내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특권”이라고 소회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작가의 특권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김진화는 작가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이 의무, 특히 이 시대의 작가들이 쉽게 망각하곤 하는 그 임무에 지금껏 성실하게 임해 왔다.
김진화의 작품은 하나의 구조요 장치다. 우선 그것은 존재의 내면에 관한 구조다. 그것은 여러 단계, 층, 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 가미된 그 각각의 단계는 존재의 심리, 정신, 마음이 얼마나 많은 요인들, 경험과 기억, 실존과 이상, 욕망과 상실의 요인들로 되어 있는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각각 상이한 단계들을 밟으면서 보다 심연으로 향하게 하는 이 장치는 존재를 구성하는‘원형적 정서’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마음의 투시경과도 같다.
이 구조는 일반적인 오브제들과는 정 반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작업의 결과는 외부로 부풀려진 형태나 형식이 아니라, 내부로 향하는 함몰이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구조의 이면이다. 그것은 세계가 아니라,‘또 다른 세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15세기 사람 토마스 아 캠피스(Tomas a Kempis)의 말대로 “길거리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침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김진화의 작업은 거리가 아니라 침실을 보여주는 것에 해당된다.“내면성을 원하는 사람은 군중을 뒤로 해야 한다”고 캠피스는 이어 말한다. 김진화의 세계 역시‘안’으로 향하는 구조고, 내면으로‘들어가는’길이다. 여기서 군중에 대한 지식은 취급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산책이나 길거리를 배회할 때의 흥분은 가라앉는다.
김진화가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단지 김진화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방이기도 하다. 존재의 심연으로 향할수록 그곳에는 한 개인을 넘어서는 것들이 자리한다. 작가는 그‘감추어진 곳’이이야말로 존재의 비밀을 담보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내면은 외부로 드러나는 행위의 동기가 형성되는 곳이다. 언어가 숙성되는 양조장이기도 하다. 예컨대 외모의 과도한 치장은 거의 내면의 콤플렉스에 기인한다. 집착적으로 꾸미고 장식하는 여성의 심연에는 타인을 향한 높은 벽이 존재한다. 과시적인 남성성의 출처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면이 사건이 일어나는 실체적 장소다. 세상의 모든 결과들은 일어나기 전에 그곳에 이미 예고된다. 그곳에서 지각과 인식, 경험의 밖으로 흐르는 시간의 외부가 감지된다. 그곳에서 시간은 연대기적이거나 순차적이지 않다. 그 공간은 중첩되고 축적되며, 접히고 접혔다 다시 펴진다. 그곳에서 우리는 역사 자체-역사의 한 순간이 아니라-와 조우하고, 인간 동료들과 신비로운 방식으로 대면하며 언어를 빌지 않고서도 대화할 수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는 이성과 합리적 사유로는 잘 접근할 수도, 풀어낼 없는 공간이다. 그것은 밖(Out)의 세계로는 계량될 수 없으며, 물질계를 이루는 것들과는 다른 것들에 의해 구성되고 성취된다. 그렇기에 그에 상응하는 보편 어휘나 객관적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계, 그 원형은‘나만의’것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작가가 어떤 주관적인 경험의 결과들을 자져다 놓건, 그것들은 우리 모두의 오차없는 텍스트로 화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의 더 깊은 곳을 탐색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작품 <거울의 방>은 존재 내적 실체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는 자기애적 속성을 다룬 것으로, 김진화가 구축하는 내면의 구조를 이해하는 예로서 적절하다. 외부로부터 가장 가까운 층이자 내면의 가장 외부인 첫 번째 층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붉은 꽃의 수술을 보여준다. 이는 공격적이고 정복적인 쪽으로 나아가려는 남성성의 자기애를 보여준다. 두 번째 층은 본성을 자연의 모습으로 전달함으로써, 존재론적 특성으로서의 자기애의 다른 측면을 부각시킨다. 세 번째 층은 꽃에 비유된 여성의 자기애를 다루고 있다. 이 층들의 마지막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자기애적 본성들의 단계를 지난 관람자들은 그 끝에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의미의 층들을 경유하면서, 결국 끊임없이 욕망의 충족이란 전쟁터로 존재를 몰아대는 자기애의 심리적 구조를 성찰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
김진화의 별자리들이 꿈으로 향하는 통로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별자리들은 현대인의 일그러진 초상에 관한 비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자주 등장하는 사수자리의 캔타우루스(Centaurus)는 서로를 향해 활을 겨누는 경쟁적 일상 속에서 매몰되어가는 현대인을 의미한다. 거꾸로 된 의자에 앉아있는 카시오피아는 허영기로 스스로를 은폐하며, 무의식적으로 자기방어적인 삶을 영위할 뿐인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김진화는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현대라는 시점과 그 시점이 생성해내는 삶의 부조리한 형식들을 문제삼는다. 물질적 사유의 폭주, 내면세계의 고갈과 황폐, 그리고 그 골을 더욱 깊게 하는 인간성과 인간 상호간에 대한 불신, 일테면“인정이나 함께 나누는 사랑, 인간 사이의 신뢰보다는 돈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자본사회의 삭막함… ”하지만 작가가 그렇게 하는 장소는 준엄한 법정이 아니다. 부조리한 실존을 다루는 방식 또한 고발이 아니라 직시하고 보고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김진화의 존재 해부는 그토록 적나라하면서도 절망이나 고통과는 무관한 것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현대의 병리학을 직시하고 보고하는 장소는 다름아닌‘하늘’이다. 하늘은 그에게 초월적 차원의 상징이다. 그곳을 바라볼 때 비로소 심연을 교란하던 세계의 문제들이 각각 제자리를 찾는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 살아가다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 위를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 할 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자유를 느끼게 된다.”(김진화)
김진화의 세계가 자신을 옥죄는 것들을 다룰 때조차 냉정한 지적과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 것은 결국 그의 이러한 영혼의 태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의 세계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으며, 그렇기에 더욱 지나쳐버릴 수 없는 동시대의 동료들에게 제시하는 진단과 처방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처방에는 존재의 내면을 이루는 실체들, 욕망과 상실의 구조들, 일상과 이상의 충돌들과 그것들의 구조적인 연결고리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해들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가 내놓는 처방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라도 바쁜 일상사의 시계를 멈추고 서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삶은 너무나 분주하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쉬지도 못하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잡기 위해 그리 분주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일까? 모든 것들이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멈추어 서서 별자리를 보는 것은 단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이 시선의 상승이 우리로 하여금 굳은살졌던 내면의 감각을 다시금 포촉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선은 동시에 존재의 심연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김진화는 한 쪽으로는 끝없이 깊고 복잡한 존재의 내적 실체로 향하는 단계들을 지속적으로 개척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채집한다. 한쪽으론 아픈 실존을 분석해내면서 다른 한쪽으론 별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한 초월의 감각을 연습한다. 김진화의 작가적 통찰과 그 실천으로서의 예술작업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실은 이 두 길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
오명란(신세계갤러리 수석큐레이터)
…
저 땅속 낯설고 신비로운 이상한 나라에서
새와 짐승과 다정하게 재잘거리며
헤매고 다니는 꿈의 아이를 쫓아.
…
엘리스! 너의 부드러운 손으로
동심이 가득한 이 이야기를 가져가
추억의 신비로운 가닥속에 놓아두어라.
…
영국의 수학자 루이스 캐롤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원작 서문에 실린 시의 부분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던 엘리스가 낯설고 신비로운 이상한 나라에서 겪는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쓰여진 지 150여 년이 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많은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주며 사랑 받고 있는 동화이다. 하지만 단어를 이용한 말장난, 잘 짜인 유머, 당시 시대의 풍자까지 온갖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여 깊게 들여다 보면 볼수록 쉽지 않은 동화이다.
난해함을 담고 있지만 세계의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읽는 동화가 된 이유는 환상의 세계와 논리의 세계가 절묘하게 만나며 유쾌한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김진화의 작품을 들여다 보면서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중첩시켜온 동화이다. 물론 실제 김진화의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꿈꾸는 대로 만들어 낸 세상,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곳곳에 비틀리고 조합된 모습으로 숨겨져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태. 이것이 루이스 캐럴과 김진화가 글로, 이미지로, 감아낸 세상의 교집합이라면 교집합일 것이다.
김진화는 신화, 별자리, 인문학적 관심으로 엮어진 사고를 글로 드로잉 한다. 이러한 스토리에 이미지를 유추하거나 연상하고, 다시 자신의 상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들을 선택적으로 조합하여 본래 가지고 있던 이야기는 사라지고 작가가 만든 꿈의 세계가 형성된다. 그리기로 시작하지만 평면에 머물지 않고,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중첩시키고, 사고를 중첩 시키며, 2차원도 아니고 3차원도 아닌 환영(illusion)을 만들어 낸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상당히 논리적이고, 초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감각적으로 익숙한 분위기는 김진화만의 조형 언어가 된다. 한정된 3차원의 공간 속 평면에는 여러 개의 공간이 중첩되어 펼쳐져 있고, 또 그 속에는 하늘, 풍경 등 무한 공간의 이미지가 담겨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이는 작가가 이번 시리즈 작품을 통해 담고자 했던 인간의 “상승” 본능을 위해 더욱 의도적으로 연출한 화면일 것이다. 패턴화된 사각형의 반복으로 획일화 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LED를 이용해 별자리의 반짝거림, 희망의 빛을 담아, 전작들에 비해 밝고 긍정적인 꿈을 담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그 무엇-Something What We Need’ 이라는 전시의 주제가 의도하는 것이기도 한다.
순진무구하고 겁이 없는 엘리스가 우리가 찾고자 하는 환상의 세계를 용기 있게 경험했던 것처럼, 김진화가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볼 수 있기를, 단조로운 일상도 눈을 감고 상상하기 나름이다.
김진화의 작품세계
김진화의 작품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신비스런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LED조명으로 수놓은 별빛과 여신, 천사, 그리고 기호처럼 나열되는 사물들... .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조합이지만 호기심으로 빠져들면서 왠지 모를 행복함이 차오르게 된다. 깊은 사색과 자로 잰 듯한 엄격함이 느껴져 매우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푸른 하늘 한 조각에도 꿈을 매달 수 있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진화는 많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심리,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판, 인간의 잠재 욕구 등을 화두로 삼았다. 그러나 항상 작품의 내면에 흐르는 것은 ‘인간의 순수 영혼을 일깨우기’였고, 평면과 입체, 설치작업의 상호조응과 공간 탐구를 바탕으로 작품 형식의 변이를 추구해 왔다.
......
건조해진 타인들에게 행복한 쉼을 주고자 쉬지 않고 달려온 창작의 길이지만 김진화에게 작업은 자신과의 대화의 길이기도 했다. 평면과 입체, 설치를 넘마들며 공간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복시키고 빛을 끌어들이며, 어떻게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더 유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예술의 길로 들어선 이후, 산고를 겪고 탄생한 작품은 김진화의 청년기의 고민과 철학, 감성과 취향, 깨달음과 도전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항상 생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내면의 나를 귀한 존재로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때 무지가 끝나고,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진실한 자아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어려운 철학적보다도 관객이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공감과 소통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들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황유정 학예연구사 전시서문 중 (2015년 광주시립미술관 청년작가 초대전 “꿈꾸는 창” 전)-
Kim Jin Hwa's works ensnare viewers with their mystic atmosphere. Starlit scenes bedecked with LEDs, goddesses, angels, and things resembling symbols - the coalescence of these elements is enigmatic, but viewers may feel a sence of happiness and fall into her work with curiosity. Her pieces appear very rational with profound contemplorary humans, and latent desire. She has always put focus on "awakening humanity's pure soul", seeking a transition in the form of her work based on interactions between two-dimensional and three-dimentional works and installations as well as an exploration of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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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in Hwa has been tirelessly absorbed in creating art in order to offer others a moment of calm and relaxation but that is not all. Her work is also a way of talking to herself. She has considered how to move beyond the boundaries between planes and solids, how to apply new ideas to spaces. how to draw light into her work, and how to generate more interactions with viewers. Her work hold her adolescent troubles, philosophies, emotions, preferences, enlightenment, defiance. What she focus on is to regard her inner self as an invaluable being. When one realizes his existence, he is able to find ture happiness sfter putting an end to ignorance. That is why happiness starts from one's ture self.Kim believes that introducing viewers to works they can easily appreciate is more important as the ture objective of her work is to make them feel happy rather than convey and abstruse philosopical thoughts. That is also why she thinks art assumes the role of allowing people to see their hopes and dreams throught appreciation and communication.
원형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김진화 展 '나무의 미학 The Aesthetic of the Tree‘
고 영 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예술가가 무엇을 표현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향수자로 하여금 그 ‘무엇’, 좁게는 왜 그러한 대상을 취하는지에 주목하게 하고, 더불어 그 대상이 함축하는 가치에도 주목하게 한다.
이는 일련의 예술적 행위로써 다다르고자 하는 지향점에 대한 물음이며, 예술의 주제가 되는 현상, 그것의 이면에 놓인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반성하는 창작자의 사고를 간접적으로 유추하는 과정일 것이다. 창작 영역에서의 내면, 심상, 현상학적 환원, 상징, 내적 표현, 상상 등의 용어들은 이미 낯설지가 않으며, 이는 예술이 지니는 비가시성의 가시화가 외려 그 해석의 여지에서 보편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동안 김진화는 초현실주의적 표현기법 이면에 다양한 서사를 담아왔다. 작가가 보여준 이미지는 환영(Illusion)에 가깝지만 그의 작업 과정은 유미적인 과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공감할만한 상징체계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타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설치와 입체, 평면 등 형식의 스펙트럼을 넓혀감과 동시에 철학, 심리학, 역사, 신화와 별자리, 음악과 문학 등의 다양한 인문학적, 문화적 접근을 통해 작가 특유의 조형언어를 구축해 왔는데, 작업의 내용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인간 삶의 원형 찾기와 그것의 궁극적인 가치에 초점을 두었다. 주지해야할 부분은 각박한 삶에 대한 도피, 혹은 그것의 직접적인 비판이나 부정의 태도에서 벗어나, 현실로 인해 상실한 생의 긍정적인 부면들을 환상적인 상황과 공간 연출을 통해 우의적으로 드러내려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금번에 진행할 전시 ‘나무의 미학 The Aesthetic of the Tree’ 은 메시지의 경중에 있어 더욱 구체성을 띄는데, 대상으로서 나무가 지니는 상징성, 즉 나무의 생태학적 현존에 인간의 삶을 비유적으로 대입시킨다. 나무는 성서를 비롯해 고대 신화나 전설, 그리고 문학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그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나무는 익히 신성(神聖)의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하였고, 가깝게는 인간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휴식과 삶의 안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안식, 사유, 몽상 등의 어감에서 느껴지는 정적인 기운과 상승, 혹은 수직의 형태로 그 생명이 대기를 향하고 있는 동적인 기운은 나무의 이원적인 상징구조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근원적 생의 원리에 순응하지만 이내 목적지향적인 삶을 염원하는 사람살이의 현재를 효과적으로 투영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상의 중의성은 김진화 작업의 형식적 · 내용적 특질과 잘 어우러진다. 김진화의 작업에서 두드러진 공간에 대한 집착과 그 연출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육면체 공간에 자리한 각각의 프레임은 현실 속 자아와 이상 속 자아로 분리되어 있으며, 건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학적 구조물에 나무와 달, 바람, 새 등의 자연물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며 특유의 몽상적인 화면을 제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 지속해온 입체작업, 즉 육면체 안에 여러 장의 평면 이미지를 레이어의 형태로 구축, 3차원 공간으로 재해석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또한 중첩된 이미지들 사이에 LED발광체를 결합한 작업 형식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기법은 주제의 극적 제시와 더불어 빛의 상징성에 몰두한 결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에서의 상승본능을 LED와 결합시켜 전달한다”고 표현하는데, 각박한 현실로 인해 잃어버린 꿈, 혹은 그것의 희구라는 보편적인 서사를 조명효과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서술하려 한다. 소위 빛이 수반하는 물질성을 알레고리화한 것으로, 그 상징적인 주제 전달의 효과는 각 감상자의 체감의 영역에 맡겨야 할 것이다.
김진화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극락조를 언급해본다. 극락조가 암시하는 메시지, 그것처럼 우리의 생과 사, 그 지난한 여정 안에서의 행복은 피안의 저편에 있지 않을 터이다. 우리가 일상의 근거리에서 놓치고 있는 생의 가치들을 재조명하고 삶의 긍정성을 회복하는 길, 어찌 보면 작가는 예술로서 예술적인 방법론으로써 동시대의 우리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했던가? 각자의 내면을 깊이 내다보며 원형으로서의 삶을 다시금 꿈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글쓴이 : 광주미연 (광주비엔날레 정책연구실 실장 조 인호)
날짜 : 2011-12-26 17:06:28
Something What We need
세상의 하루를 채우던 온갖 것들이 서서히 어둠에 묻혀 무대 뒤로 사라지고 신비로운 기운들이 가득한 사유와 성찰의 세계가 투명한 상념 상상들로 연이어지면서 신비 가득한 가상공간을 만들어내는 듯한 독특한 표현세계의 김진화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어가듯, 조명을 낮게 내려 작품 속 LED점들이 그 희미한 빛을 어렴풋이 내비치고 있는 전시실 안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은데, 성탄절 때문에 유난히 눈부시게 밝고 화려한 바깥 백화점 풍경에서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듯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별자리와 신화, 고전문학 속 구절들과 함께 지금의 세상 현실 속에서 침잠된 내적 언어들이 작가의 고독한 사유 속에서 결합되고 재배합되고 새로운 조형언어들로 빚어지면서 신비한 심상여행을 즐기게 된다.
‘Something What We need'라 이름붙인 김진화의 여덟번째 개인전은 12월 14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신세계갤러리의 초대전으로 마련되었다. 대부분 일정한 깊이를 가진 입체회화 형태의 상자 틀 속에 서양 고대신화와 별자리와 상징적인 도상들이 무대구성처럼 겹을 이루며 이야기를 연출하고, 그 사이사이에 별빛 같은 작은 LED조명들이 점점이 박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공기와 꿈>, <한여름밤의 꿈>, <비밀의 정원>, <찬란한 시간>, <달과 숲>, <하얀밤>, <어느 날... 그 방에서...>, <한낮의 꿈>, <판도라의 상자> 등 제목부터가 시어 같은 농밀함과 문학적 서정이 짙게 배어나는 작품들인데, 이전부터 계속해오던 주제의식이나 표현세계가 끝없는 상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무언의 이미지극처럼 꾸며진 각각의 얘기상자들은 지극히 몽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담아내고 있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백마ㆍ천사ㆍ체스ㆍ격자무늬 바닥패턴 등의 작품 속 구성요소들은 지금의 세상살이를 비유하고 상징하며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한 신세계갤러리 오명란 큐레이터도 전시 팸플릿에 담은 전시서문에서 “김진화는 신화, 별자리, 인문학적 관심으로 엮어진 사고를 글로 드로잉한다. 이러한 스토리에 이미지를 유추하거나 연상하고, 다시 자신의 상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들을 선택적으로 조합하여 본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사라지고 작가가 만든 꿈의 세계가 형성된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상당히 논리적이고, 초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감각적으로 익숙한 분위기는 김진화만의 조형언어가 된다”고 평한다.
현실과 예술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숱하게 스치는 생각들을 걸러 이야기를 응축시키고, 그 이야기들을 잘 실어낼 만한 도상을 그리고, 이미지들이 오려진 화판들을 서너겹씩 중첩시켜 입체공간으로 연출하고, 사이사이에 LED소자를 심어 내적 영감과 상상을 더 깊이 이끌어 줄 유도등들을 밝히는, 그래서 그저 자유로운 상상만이 아닌 그런 상상의 이미지들을 견고하게 엮어내는 대단히 이지적이고 정교한 제작과정이 동시에 필요한 작업으로 보여진다.
내면화/가시화된 공간과 조형형식의 역동성
한진 미술사학 박사/달뫼미술관 큐레이터
김진화의 설치작품 도시 연작 <Invisible Cities> 은 뉴욕유학을 하면서부터 천착해 온 공간에 대한 치열한 조형적 탐구의 선상에 있고 그 보이지 않는 공간을 다양하게 시각화하는 주제내용으로는 역시 불가시의 세계인 작가내면의 모습을 시각화 한다. 결국 눈으로 볼 수 없는 두 가지의 대상, 물리적 공간과 심리내면의 공간에 대한 다양한 조형상의 공략이 김진화의 최근 작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음악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장르라면 미술은 애초 눈에 보이는 형상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일진대 텅 빈 공간에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김진화의 작업은 전통적인 미술의 관점에서 퍽이나 벗어나 있는 셈이다.
상충하는 형식미의 역동성
<보이지 않는 도시, Invisible Cities> 연작에서 김진화는 공간의 반대개념이랄 수 있는 이차원의 평면을 삼차원공간의 표현을 위해 과감하고도 정확하게 이용하였으며 이번 설치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하다. 채집하여 조합한 이미지를 두 장의 아크릴판 사이에 넣고 고정시킨 후 그 직사각형의 아크릴판들을 전시공간에 일렬로 배열하여 매달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일점투시법이 캔버스와 같은 평면상에서 원근의 착시효과를 이루었다면 이와는 반대로 김진화의 설치작품에서 일렬로 배열된 아크릴판은 중첩된 평면이 되어 실제 공간의 물리적 존재 또는 깊이를 지시한다. 일점투시법에서 평면이 공간을 대변하고 대리하고 위장하면서 회화의 우월성을 담보하였다면 김진화의 설치작품에서 평면과 공간은 서로 밀고 당기는 대립의 관계를 유지한다. 달리 말하면 수학에서 미/적분을 하듯 불가시의 공간을 여러 조각의 평면으로 잘라내고 그 자른 조각을 다시 배열하여 삼차원 공간을 가시의 세계로 치환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아크릴판이--회화처럼--벽에 걸린다면 역동적인 평면과 공간의 대립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단조로운 평면의 무한독재만이 계속 될 것이다.
김진화가 이전에 발표한 설치작품을 보면 입체이거나 무정형의 형태를 지니는 오브제가 많았다. 예로 종이를 지지물이 없이 매달거나 바닥에 설치하면 자연스럽게 구겨져서 특정한 형태는 없지만 그 자체로 이미 부분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시인의 숲 (2002)이나 절대자의 숨바꼭질 (2005)에서 잘 나타나는데 종이라는 평면이 공간의 힘에 이미 포섭되어 버린듯하여--늘어선 평면의 아크릴판이 공간의 존재를 지시함과 동시에 그 공간의 급조된 권력에 대립하면서 야기되는 팽팽한 긴장감 보다는--조화로운 아늑함이 우세하였다.
상충되고 상반되는 조형요소의 대립적인 병치는 도시연작의 작품세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Dream of Cities>는 원형 안에 핏줄을 연상하게 하는 나뭇가지에 여러 가지 이미지를 부착하였고 바로 옆에 설치한 <Cities and Desire>는 사각형 창살과 같은 구조에 형상을 콜라주 하였다. 유기적인 구성과 기하학적인 구성을 대립병치 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Cities and Signs>의 기하학적인 창살구조와 <The Silence of Cities>의 표현성이 강렬한 나뭇잎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나란히 설치하였다.
가시화된 내면의 풍경
상충되고 대립되는 형식요소를 병치하여 역동적인 미적구조를 유지하는 조형사고는 시각적으로 볼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의미내용으로 그리고자하는 작가의 의도와 맞닿아있다. 뿐만 아니라 채집, 변형, 조합된 이미지는 공간에 둥실 떠있는 동시에 두 장의 투명한 아크릴판에 갇혀있는 데 이러한 작품의 구성 또한 구속과 자유의 이중의 의미구조를 내포한다. 김진화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물질적인 세계와 비물적인 세계,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현실과 비현실적인 세계, 육체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 이러한 영역들을 한 마디로 볼 수 있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평면과 공간을 그 역동적 차이를 용인하며 아우르듯 작가는 비미술의 영역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물론 국내외를 막론하고 형상을 통하여 심리내면을 그린 작가는 많다. 초현실주의 미술작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막스 에른스트는 김진화처럼 콜라주 기법으로 심리적인 환상을 표현하였다. 그렇지만 그 차이는 확연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사회적, 성적, 심리적인 억압이나 상처의 병적 증상으로 파악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경도되었던 그들에게 억압되고 상처받은 심리내면은 치유할 수 없는 병이되어 돌아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내면세계는 결코 아름다운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김진화에게 비가시적인 심리내면은 마음껏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동경의 세계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때는 내게 세계는 넓고 넓은 그 무엇이었다. 보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너무나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보고 싶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병든 심리상태를 표현했다면 김진화는 자본주의 물질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과 상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그린다.
도시연작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초현실주의풍의 음산한 이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열쇠구멍형상의 구성, 꼭두각시처럼 조종되는 인물들은 도시의 단절감이나 현대인의 이기심을 의미하는 모티프이다. 김진화의 보이지 않는 세계 또는 도시는 실제의 세상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를 읽는 과정이 단조롭지가 않다. 다만 그가 비판적으로 보는 상황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처럼 어떠한 출구도 존재하지 않는 절망이 아니라 개선되고 치유될 수 있는 대상이다: “상처를 꿰매듯 그 위에 실로 재봉한다.”
김진화가 뉴욕유학이후부터 제작하고 발표한 작품들은 다양한 형식을 보여주었고 그 주제내용 또한 깊이와 다양성을 유지했다.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만큼 작가는 독서에서 자주 작품의 영감을 얻고 깊은 사색을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김진화의 내면세계, 그 사색의 도시에는 지금쯤 어떠한 모습의 신작이 숨쉬며 성장하고 있을지 보고 싶어진다.
김진화, 비상(飛上)을 꿈꾸다
황 유 정(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전시를 개최하며
나무를 밑에서 올려다 볼 때, 사람들은 누구나 넉넉한 나무의 품새를 닮고 싶어 한다. 든든한 팔과 같은 가지에 잎을 돋게 하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또 달콤한 열매를 매달고 있다. 그 품은 한없이 따뜻해서 걱정을 부려 놓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조금 더 나무를 따라 끝없이 올라가다 보면 나무의 꼭대기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새는 둥지를 틀어놓고, 자신의 발바닥만 겨우 올려놓을 수 있는 정점에 앉아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또 다른 비상을 꿈꾸고 있다. 땅에서 올려다보기만 해서는 어림없는 풍경이다. 나무와 함께, 나무처럼 비상해야만 엿보기가 가능하다. 마음의 비상(飛上)이 가능한 사람은 천상의 세계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마음의 비상이 가능한 작가가 있다. 김진화는 열린 창공을 향해 촉수를 뻗어보는 호기심 많은 작가이다. 평소 책을 통한 철학적 사유와 글쓰기를 즐겨하는 김진화에게 누적된 시간은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일반인들은 김진화를 작품에 빛을 적극 활용하는 작가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작업의 출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의 공간을 가시화시키고자 입체와 평면, 설치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내면의 갈망을 창의적으로 분출시켜온 감탄할 작가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처럼 역동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진화를 올해의 청년작가로 선정․초대하여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작업이 재도약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2. 김진화의 작품세계
김진화의 작품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신비스런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LED조명으로 수놓은 별빛과 여신, 천사, 그리고 기호처럼 나열되는 사물들... .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조합이지만 호기심으로 빠져들면서 왠지 모를 행복함이 차오르게 된다. 깊은 사색과 자로 잰 듯한 엄격함이 느껴져 매우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푸른 하늘 한 조각에도 꿈을 매달 수 있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진화는 많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심리,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판, 인간의 잠재 욕구 등을 화두로 삼았다. 그러나 항상 작품의 내면에 흐르는 것은 ‘인간의 순수 영혼을 일깨우기’였고, 평면과 입체, 설치작업의 상호조응과 공간 탐구를 바탕으로 작품 형식의 변이를 추구해 왔다. 이번 전시는 2015년 신작을 중심으로, 초창기 회화작품을 비롯 드로잉, 설치, 평면작품, 입체작품, LED 작품 등 각 시기마다 개인전을 통해 보여주었던 중요작품을 전시함으로써 김진화의 작품세계를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직후 열린 제1회 개인전(1994)에서 보여 준 작품들은 다분히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예고했다. 김진화의 말을 빌리자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항상 조각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전시 중인 작품 <한여름 밤의 꿈>(1994)을 보면, 종이를 바탕으로 물감을 칠하고 긁어내고, 덧칠하기를 반복함으로써 결과 된 형상이 중첩된 레이어의 느낌을 일게 한다. ‘평면작업을 어떻게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욕구의 전조가 읽혀진다. 또한 표리부동하고 물질과 권력이 팽배한 세상사가 불편한 김진화는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보다 더 무궁한 내면의 세계로 몰입을 추구했다. 당시 작품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나무와 인간, 창공을 향한 통로, 그리고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등은 순수 영혼을 향한 자기 내면의 대입체이자 고양된 정신세계를 바라는 표현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현재의 입체 레이어 작업으로 이끈 방향키가 되었다.
자연의 유기적 변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최고의 대상이었다. 김진화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다양한 설치작업들에 적극적이었다. “Into Drawing"(2002) 전에서는 책에서 오려낸 글귀들을 실에 매달아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뒤 드로잉 작품을 함께 설치함으로써 평면과 입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드로잉의 경우 시적 언어가 오브제와 결합되기도 하는데, 김진화에게 드로잉은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언어였다. 주의 깊게 보면, 드로잉 작품은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삶의 흔적을 추상화 시킨 드로잉 작품 <흔적>(2007)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마구 뭉개져 있는 드로잉, 날개 달린 인간의 추락, 반복되어지는 네모의 창문 등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하고 있는 작가의 무의식의 반영이다. 작품 <Coming out>(2004)은 생명력으로 변화해가는 자연현상을 시각화시킨 설치작품이다. 부드러운 부피감의 오브제를 만들고 길이가 다른 실을 매달아 각기 다른 개인의 ‘자아(自我)’를 표현했는데, 기대처럼 오브제는 전시 공간과 결합함으로써 다양한 공간을 연출했다. 오브제에 비춰진 조명은 그림자를 만들고 그 그림자는 또 다른 공간 형성으로 이어짐에 따라 유기적 공간처럼 느끼게 한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이번 전시 공간에 맞추어 축소된 규모로 설치되어 있다. 이처럼 설치작업이 다채롭게 이어진 2000년대 중반까지는 평면(2차원)과 입체(3차원)의 상호작용과 공간에 대한 탐구기간이었으며 평면작품에서도 박스 안에 드로잉이 꼴라쥬나 오브제와 결합한 작품으로 나타나는 등, 새로운 작품 전개를 기대하게 했다.
2006년의 개인전에 설치된 작품 <Invisible Cities>는 도시 이미지를 8개의 영역으로 형상화한 연작으로, 김진화 작업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비가시적 공간의 가시화를 위해 평면상에 시각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로 드로잉 함으로써 관객을 내면세계로 유도했던 것과는 달리 규칙적 간격으로 평면을 여러 장(6~8장) 겹쳐 설치함으로써 중첩된 이미지가 실지 입체 공간을 만들도록 하였다. 평면과 입체의 상호작용을 위한 또 한 번의 실험인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금까지 설치에 사용했던 실이나 종이 대신 평면의 지지대로 아크릴판을 사용한 점이다. 관객들은 아크릴판 설치물 사이로 통행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시점이 정면으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방향에서 볼 수 있는 다시점을 획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8개 연작 중 4개의 시리즈를 구성해서 전시하고 있다. 작품 <Cities and Desires>에서 보여 지는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나 <Cities and Eyes>의 거미줄처럼 엮인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세상에 포획된 고전 글귀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향한 비판을 가하는데, 서정적으로 치환시키는 은유가 뛰어나다.
2007년 이후, 김진화는 레이어 작품의 편리한 보관과 작업의 용이함을 위해 종이 대신 포맥스라는 견고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체의 단단한 물성이 주는 완고함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일면을 함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레이어 층은 뒤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조도를 보안하기 위해 LED 조명의 매입을 착안했다. 한편 포맥스로 만든 겹겹의 층은 LED 조명의 밝기 조절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의 연출이 가능해서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A Room of One's Own(자기만의 방)”(2008) 개인전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잠재의식을 건드려 보여준 전시였다. 편집증으로 인한 현대인의 불신에 관한 대형 레이어 작품인 <켄타우루스(Centaurus)의 전쟁>이나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바탕으로 한 <거울의 방>, 콤플렉스를 배경으로 한 <가면 속의 여인>, <과대망상> 등 현대인의 잠재된 심리현상을 들춰내었다. 열쇠구멍을 통해 보여 지는 <자기만의 방>은 각자의 내면세계를 응시하게 하는 작품으로, 집착, 의기소침, 아집, 쉼에 대한 갈망 등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별자리와 매치된 여러 사물들을 나열함으로써 치유의 과정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유도했다. 여기서 소재로 선택한 신화의 주인공이나 별자리, 신전과 같은 건축물 등은 계속해서 다른 작품에도 반복되고 있다. 김진화가 사람들의 세상사를 이야기할 때, 이처럼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는 것은 알레고리적 요소가 많아 훨씬 풍부하게 내면 심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 일상에 갇혀버린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정방향의 패턴이나 규칙적인 계단 또한 심연의 공간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2010년, 북경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북경에 거주했던 시기는 내면에 집중하면서 작업 방향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번에 전시중인 작품 <어느 날, 화장실에서..>(2010), <처녀자리에 대한 감정이입>(2010) 등은 오브제가 결합된 원형작품으로, 그 시기 작업의 일부이다. 원의 형상은 안정과 휴식을 느끼게 하고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완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내밀한 자신만의 공간으로도 연결되어진다. 김진화는 내면에 집중할수록 자신의 존재를 발견해가고, 진실한 자아를 만나면서 행복으로 충만해갔다.
김진화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개인전 “Something What We Need”(2011)에서 보여준 작품에는 별을 모으던 소유욕 가득한 여인이 꽃을 쏟아 붓는 은혜로운 여인으로 바뀌어졌고, 출구가 막혀버린 미로(迷路)대신 별이 수놓아진 아름다운 창공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이 열리고 있다. 자기연민으로 왜소해진 현대인들을 냉정한 비판의 눈으로만 가두지 않고 영원의 하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천공을 그리고, 아름다운 별이 반짝이게 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면 희망이 다시 깃들 수 있도록.... . 부드러워진 LED 조명이 만든 환영의 공간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담긴 부정적 자아보다는 긍정적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상승본능을 자극한다. 김진화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내면의 힘을 일깨우고 충만함을 주기 위해 더욱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천사>(2013), <천사가 되어...>(2013) 등 날개 달린 천사를 이미지화 한 작품이 자주 등장하고, “나무의 미학”(2014) 개인전에는 창공으로 뻗어 나가는 나무를 중심으로 ‘천국의 새’ ‘날개 꽃’ ‘별 나무’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체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김진화가 바라는 천상의 꿈은 인간 내면의 치유와 살아 숨 쉬는 영혼의 회복을 위한 기도이다.
올해의 신작 <밤으로의 여행>은 어두운 밤 공간의 유리창을 통해 보여 지는 실루엣에서 착안한 설치작품으로, 공간 속에서 명멸하는 풍경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각의 한지 프레임 뒷면에 포맥스로 만든 형상들과 LED 조명이 감춰져 있고, 시간차를 두고 불빛이 깜박이는 11개의 패널은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빛의 효과를 절묘하게 살린 작품이다. 밤은 우리가 잠든 사이 많은 신기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시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심연을 향한 사색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김진화는 사람들이 매혹적인 밤의 창을 통해 순수한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작가가 펼쳐 놓은 밤 풍경을 응시하다 보면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뻗어 나가는 자신의 비상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3. 맺음말
건조해진 타인들에게 행복한 쉼을 주고자 쉬지 않고 달려온 창작의 길이지만 김진화에게 작업은 자신과의 대화의 길이기도 했다. 평면과 입체, 설치를 넘나들며 공간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시키고 빛을 끌어들이며, 어떻게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더 유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예술의 길로 들어선 이후, 산고를 겪고 탄생한 작품은 김진화의 청년기의 고민과 철학, 감성과 취향, 깨달음과 도전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항상 생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내면의 나를 귀한 존재로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때 무지(無知)가 끝나고,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진실한 자아(自我)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어려운 철학보다도 관객이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감과 소통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진화의 ‘꿈꾸는 창’전을 통해 각자에게 감춰진 내면의 힘을 고양시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