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완료스팩트럼
타라재이 (독립웹진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방해』편집자)
시계속에서살아간다. 시간 안에 있으면서 시간을 망각한채, 우리는 있다. 나는 문득궁금해졌다.
시간을 바라볼수있을까. 시간의 바깥에 서서, 온전한 시간을 바라보는 것이가능할까.
그러기위해서는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순간만이 유일한 현재에서 인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간이란 사라지는 자체로 나타나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고로, 시간은 미지의 세계,
퍼져나가는 동심원, 바람 곁에 흩어지는 세상의 냄새, 음악이 끊긴후의 고요와 비슷한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사라지며, 또여기에 있다. 그것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의미없이 사라지며, 때론권태롭다.
그래서 인간은 늘 시간을 탐해왔는지도 모른다.
안에 있는 동시에, 밖에 있기를 원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시간 안에 있으면서, 시간을 그리워 해왔다.
김명우 작가는 시간을 소재로 작업하는 청년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현재에 서서 과거를 바라본다. 작품 속 그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로 분절되지 않는다.
하나의 개념으로 시간을 꿰는 방식이다.
때문에, 그는 작업시간 대부분을 시간에 대한 사유로 보낸다. 시간을 다루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실로 옷감을 짜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흔적을 만들어내듯 조용히 작가는 자신만의 흔적을 만들어왔다. 그는 현재를 관찰하여 과거와 간극을 포착하고 그것을 겹쳐놓는다.
오버랩 된 시간은 각기 고유한 시간성을 유지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는 시간의 간극에서 서서,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인간 소외, 맹목적 욕망,
무관심, 정보의 무가치 등 있었던 것과 있는 것, 사라진 것과 사라질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안에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낸다. 마치,
안에 있으며 밖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의 초기작은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관한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존재의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의 ‘현재완료’ 시점으로 진화했다. 그의 시선은 과거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에 이른다. 섣부르게 미래를 짐작하거나 예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속한 현재와 과거의 어느 시점을 끈으로 연결해 나가는 방식이다. <랜턴>(연도:XX)은
시간의 간극을 오버랩하여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빛은 ‘시간 연장’이라는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에 다른
은유를 가진다. 과거의 빛은 ‘시간 연장’ 자체를 의미했으나, 현재는 ‘에너지 드링크’가 그 역할을 대신 한다. 밤보다 환한 낮을 갖게 되었지만, 현대인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마져 위협받으며 잠들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빛이 지금은 자본을
위한 노동자의 전유물이라는 점에서도 아이러니를
갖는다. <Build-Tower of Life>(가변크기
3채널 비디오, 동전설치, 2015)는 자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재현한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동전 몇닢이면 하루종일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더많은 부를 쌓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다. 수단이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린 돈,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동전 쌓기'로 보여준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하는 인간 내면을 관찰하며 '동전 설치’를통해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시간발굴>(연도:XX)은
현재에 매몰된 자아가 과거와 조우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멀지 않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재인식하며, '시간 위'를걷는 경험을 가능케 한다. 각종 전자제품이나 통신기기들의 발달 속도에 따라 너무나 쉽게,
빨리 사라지는 과거를 바라보며, 현재의 속도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여기’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행히도, 인간은 예술의 영역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