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腦)’와 ‘방(房)’이라 불리는 무대
이원곤(단국대 교수, 미디어예술론)
건축공간, 혹은 방(房)은 인간에게 어떤 곳인가? 사전적 정의가 어떠한지는 차치(且置)하고, 나름대로는 ‘막히고 열린 공간의 구성에 의해 어떤 삶의 영위를 가능하게 하거나, 생명을 보호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장치가 아닐까’ 정의해 보고 싶다. 가장 작은 생명을 담는 세포도 알고 보면 하나의 방이지만, 크게는 사회적 활동을 위한 공공건물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생명 내지 인간활동의 거점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삶이 지속되면서 기억이 축적되고 행동의 패턴이 정착되면, 마침내 일정한 문맥을 가진 장소로 진화하는 것이다.
정정주의 ‘공간모델’들은 대개 작가가 직접 거주하거나 방문한 경험이 있는, 실재하는 건물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들은 ‘장소’들이지만, 실제로는 마치 추상적인 데이터 공간에서 CG 모델링으로 태어난 듯, 차가운 모노크롬(monochrome)의 형상으로 빚어져 있다. 그것은 주로 종이, 나무, 알루미늄과 같은 판재를 절단, 조립하는 제작방법의 자연스런 결과이겠지만, 이것은 현대의 건축물들이 기하학적 그리드를 따라 구축된 기둥, 슬라브 그리고 재단된 판재로 구성된 사실과도 부합된다.
그런데 이 모델들에는 고유한 장소들의 명칭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상실하고 부유하는 듯이 보인다. 일찍이 E. 렐프(Edward Relph, 1944-)는 현대도시의 ‘모든 장소가 겉모습뿐 아니라 분위기마저 동일화 되어버려서 개성이 없어 보이는, 그래서 피상적 경험밖에 주지 못하게 되어버릴 만큼 장소의 아이덴티티가 약해져 버리는 것’을 ‘몰장소성(placelessness)’이라고 했는데, 정정주의 이 모델공간들은 제각각 그 장소의 목적에 맞게 적용된 제각각의 코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표적으로는 <Metaphysical Star>가 보여주는 것처럼, 지금은 물리학에서 더 이상 논의되지도 않는 ‘에테르’와 같은 신비로운 ‘그 무엇’으로 채워진 우주가 탄생시킨 혹성처럼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 작가가 연출한 공간은, 살던 사람이 이사가고 난 빈집처럼, 디테일과 기물, 그리고 사건의 기록마저 말끔히 지워져 버렸고, 그러기에 어쩌면 실재하는 장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든 사건과 사람이 사라진, 혹은 그 위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무대같기도 하다.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 앞에 펼쳐진 시간은 아마도 ‘인적이 사라진 새벽’ 쯤 일 것이다. 마치 E. 앗제(Eugene Atget, 1857-1927)가 찍어냈던 파리의 새벽거리처럼, 이 ‘연극이 끝난 무대’는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불빛만 환하게 그 ‘비어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그 추상공간=무대에서, 그것이 모방하고 있는 장소의 기억을 부활시킬 수도 있고, 이미 지워졌을 법한 사건들을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신체가 진입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가짜 리얼리티이기는 해도, 애써 몰입하고자 하는 순진한 상상력 정도는 허용할 만한 모델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각장치’ 속에 장착되어 움직이는 카메라와 외부의 영상 때문에, 관객은 어느새 자신이 바로 그 ‘살아있는 무대’의 유령이며, 다른 시선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작은 가짜 리얼리티와 그것을 들여다보는 관객 사이에 성립되었던 시선의 위계는 미궁에 빠지고, 현실과 가상, 진짜와 가짜, 보고 보여지는 관계의 순환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응시가 일상화된 나머지 ‘사물들조차도 나를 바라보는’ 도시라고도 할 수 있고, 바라보던 나 자신조차 그 스토리텔링에 이끌려 들어가고 마는, 우리의 뇌를 닮은 극장과 같은 장치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새로운 작품에서는 이전의 공간 속에 환영처럼 떠돌던 기억들 대신, 인간들의 모습이 상(像)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는 점이 달라졌다. <40개의 방들>(2010)에서는 CCTV화면과도 같고 스냅샷 같은 40개의 영상이 각각 알루미늄 칸막이 공간 안쪽에 수납되어 있다. 그것은 세포와도 같은 프레임 속에 제각각 생존하는 삶의 군상이다. 그리고 원래는 하나의 모니터에 격자형으로 배치된 작은 영상들의 집합이지만, 그 앞에 알루미늄 칸막이 때문에 관객이 그 영상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각도는 허락되지 않고, 나머지 칸들의 영상은 알루미늄 칸막이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빛의 흔들림으로만 지각된다. 작가는 이것이 바로 우리들 인간의 눈이 행사할 수 있는 응시의 본질이며, 육안으로 접할 수 있는 리얼리티의 한계이자 특성으로서, 기계가 포착한 카메라영상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러한 시선의 법칙은 <빌라(수색로)>(2010)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작품에서는 마치 한밤중의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제각각 명멸하는 TV불빛들처럼, 그것들은 모두 그 주민들의 삶-정확하게는 그들의 뇌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려내고 있는데, 24개의 공간내부에 하나씩의 소형모니터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은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접근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수색로에 있는 군인아파트를 모형화한 이 건물은 실재하는 것이면서도 함석판의 재질감과 일렁거리며 산란되는 빛에 감기면서 생경한 풍경이 되는데, 이 방들에서 '주민'들이 각자 자신의 상처, 그것에 대한 반응을 이야기와 퍼포먼스로 풀어나간다. 그것들은 이 둥지 속의 주민들이 외부와의 관계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거기서 얻은 상처를 소화/반추/치유하며, 또 삶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의 행렬이다. 이전의 작품들이 강하게 통제된 조명을 이용해 구조적 실재감을 강조하면서 그 안에서 응시하는 시선과 의식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설정을 명료하게 한 것이었다면, <40개의 방들>에서 관객의 시선은 셀(cell)들 사이에서 흔들리고, <빌라(수색로)>에서는 동시에 발화(發話)하는 주민들 사이를 배회하게 된다. 시점의 불안정성과 세계의 복잡성이 강조된 이 작품들이 이전의 것들에 비해 분명히 후기(post)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진화인지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정정주 : 집은 빛을 위해 존재한다.
유 진 상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건물의 내부에는 아무 것도 없다. 감시카메라는 천천히 회전하면서 사방을 보여준다. 바깥으로 난 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실내에 미묘한 그림자의 문양을 던지고 있다. 감시카메라에 나타난 흑백영상을 통해 보는 건물의 원근법적인 표면들 위에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이루어진 순수한 기하학적 구성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다가 문득 창밖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실내를 들여다보는 우리 자신의 커다란 눈동자다. 갑자기 공간적 스케일의 혼란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실내공간이 감시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작은 건물의 모형 내부이기 때문이다. 미니어쳐의 내부는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고 그것은 건물을 둘러싼 빛의 조건들에 의해 더욱 강조되어 있다. 시선은 이 작은 공간의 한 점에 불과할 만큼 충분히 최소화되어 우리의 신체가 일종의 비물질적인 존재처럼 공간을 배회할 수 있도록 해준다. 화면으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 비로소 우리는 이 화면이 일종의 유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감시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화면 앞에 놓인 한 재의 작은 건물모형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과 동일시되었던 카메라의 시점이 위치하는 실내공간은 바로 이 모형의 내부인 것이다. 이 미니어쳐의 사물로서의 존재감은 그것의 사이즈만큼이나 별로 대단할게 없어 보인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이 비교적 단순하게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의 내부에 구현된 공간의 사실성과의 대비에 감탄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실성 이상의 것이 있다.
정정주의 초기작업은 1998년 독일에서 제작된 작품들로부터 비롯된다. 이 당시에 그가 주목한 것은 빛의 형태(shape)를 구체화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기숙사 내부로 비춰 들어오는 외부의 광선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이동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는 빛의 다양한 반사, 그리고 그것이 마치 특정한 의미를 띤 기호처럼 벽면에 기재(inscription)되는 현상 등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재현하거나 사물(objet)화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그는 거울을 이용하여 실내로 드리워진 빛을 특정한 모양으로 반사시킨다던지(<하나의 거울을 이용한 햇빛 반사, 1998>, <세 개의 거울을 이용한 빛 끌어들이기, 1998>), 혹은 나무 박스의 내부에 환등기를 설치하여 햇빛의 이동을 시뮬레이션하고 그것을 다시 감시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로 관찰하게 하는(<이동하는 태양을 위한 시뮬레이션 모델, 1998>) 작업들을 실행하였다. 이 당시의 그의 드로잉들은 실내에 드리워진 빛의 윤곽이 건물의 구조에 의해 굴절되는 모습을 평면적으로 기록한 것들인데, 특이한 것은 네거티브 사진에서처럼 빛에 해당하는 부분을 검은 면으로 채워놓은 것이다. (<Light Shape 1/ 2/ 3, 1998>) 이 초기의 작품들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정정주의 건축적인 실내공간과 빛이라는 요소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상호관계다. 다시 말해, 공간은 빛의 가시화, 대상화를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과 빛의 존재방식 사이에는 항상 일종의 반사, 반영, 반전 등의 간접적 매개가 자리잡는다. 나아가 빛의 관찰과 그것을 통한 빛의 지속적인 변화, 비-물질성, 초-대상성을 포착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공간의 이격(離隔, separation) 혹은 소격(疏隔, distanciation)의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무대화’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발명하게 된다. 같은 해에 그가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창문에 설치한 작품 <특정한 시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나무 구조물로 바꾸기>는 바로 이러한 구체적 무대, 다시 말해 특정한 시간대에 창문을 통해 빛의 다발을 구조물로 형상화한 뒤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관객들은 빛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데, 이는 사실상 빛 자체를 일종의 구체적 장소로 물질화한 것이다. 정정주가 ‘Shauhaus’, 즉 ‘보여주는 집’으로 명명한 것은 바로 이 관객의 신체가 시선과 동일시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집’은 그가 오랜 시간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바로 그 심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빛 자체가 시선이 머무는 환경(milieu)으로서 사물화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선(vision)은 ‘집’ 안에서 일상적인 궤적을 따라 주변을 관찰하는 시점(point of view)인 동시에, 탈-주체화된 점으로서 실내를 탈-영토화된 무대로 소격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빛이 이러한 프로세스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1998-99년에 그가 제작한 일련의 미니어쳐 작품 <집>과 <움직이는 빛이 있는 긴 집>에서 잘 드러난다. 이 두 작품에서 작가는 작은 모형 건물의 내부에 전기조명을 장치한 뒤 건물의 창을 통해 빛들이 바깥으로 비추어 나오게 하고 있다. 이 빛의 투영(casting)은 이후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중요한 테마가 되는데, 바로 미니어처 내부구조를 드라마틱한 비-물질적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바로 이 빛의 투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99년의 <모델> 이후 거의 모든 작품은 바로 이러한 프로세스에 따라 제작되어 왔다. 즉 ‘보여주는 집’(shauhaus)으로서의 미니어쳐와 그 안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외부로부터 투영된 빛의 양상을 흑백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재현되는 건물들은 주로 작가의 일상이나 경험과 관련된 공간들로서, 관객은 모니터에 비친 실내의 상황을 통해 공간과 빛에 대한 기억들로 이루어진 ‘재구축된(reconstituted)’ 사적 공간을 보게 된다. 이 공간들은 대부분 아무런 디테일이나 사물들이 없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실내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독일 유학생활이 그다지 풍요롭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더 정확한 이유는 실내의 건축적 구성과 빛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상호관계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 <높은 집, 2000>은 이렇듯 아무 것도 없는 엘리베이터 케이스 형태의 내부에 거꾸로 카메라를 매달아 위아래로 오르내리게 한 것으로, 관객은 맨 아래 쪽의 출입구로 들어오는 빛이 점점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양상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게 되어 있다. 다소 현기증을 불러일으킬만한 이 작품은 빛과 공간의 형태가 갖는 상호관계 위에 모터를 이용한 카메라의 운동을 더함으로써 ‘이동하는 주관적 시점’이라는 장치를 더하고 있다. 모터의 사용은 정정주의 작업에 극적인 사실성을 한층 더해주었다. 이제 빛과 공간의 관계는 시선의 이동이라는 ‘주관적 현전’의 일루젼에 의해 다양한 센세이션으로 번역된다. 2000년의 <기숙사>는 다섯 개의 동일한 창문을 지닌 기숙사 건물의 내부에서 창문을 향해 다가오거나 뒤로 물러서는 각기 다른 다섯 개의 운동시점을 보여주는데, 서로 다른 이 다섯 개의 카메라의 움직임은 동일한 형태의 창문을 통해 내다 본 바깥의 풍경을 약간씩 다른 모니터르 통해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비춰줌으로써 구조적 동일성과 심리적 차이들의 미묘한 내러티브를 자아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2001년의 <체육관>은 다소 커다란 체육관 모형건물의 내부에 설치된 그네 위의 카메라가 바운싱(bouncing)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기록, 전송하는 실내의 모습을 모니터로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업을 통해 작가는 운동을 빛과 공간의 관계를 압도하는 요소로 대두시키면서 지각(perception)과 그것의 인식(recognition),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미세한 지연(delay)이 관객의 시선과 카메라의 작동 사이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의 정정주의 작업은 이러한 구조적 프로세스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브레인팩토리 갤러리에서 전시한 <Inner Brain>은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육면체의 끝에 무선 비디오카메라를 달아 전시장의 내부를 흝듯이 촬영하는 장치로 이루어졌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마치 뭔가에 매달려 기계체조를 하는 선수의 순간적인 지각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빛과 사물과 공간의 관계는 베르그송의 지적처럼 운동의 개입에 통해 매번 전혀 다른 집합들을 구성한다. 각각의 순간은 근본적으로 나머지와 다른 것이다. 아주 느린 빛의 이동에서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없었던 관계의 조건들은 빠른 시점의 이동을 통해 더 이상 분명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가시화된다. 이 빠른 카메라의 운동은 이후 더욱 가속되는데, 심지어 그것은 분절(articulation)을 통해 공간들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어버림으로써 각 집합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2003년의 <유쾌한 공작소 전시하기>와 <시립미술관> 등의 작품에서 정정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모형 내부에 9개의 카메라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설치하였다. 이 카메라들이 기록한 각각의 영상은 변환기(switcher)에 의해 하나의 모니터에 순차적으로 디스플레이 되었는데, 관객은 마치 감시통제실에서 바라보듯 건물의 구석구석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공간들에서는 외부조명에 의한 내부로의 그림자의 투영이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어지면서 공간의 성격과 카메라 시점의 특성이 강조되었다.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음영의 심리적 역할은 가령 건물의 뼈대나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의 원근, 나아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보듯 ‘판옵티콘’ 형태로 이루어진 건물의 중심으로부터 방사상으로 퍼져나가는 시선의 방향을 암시하는 요소들로 이어지고 있다. 후자의 경우, 감옥의 창살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문양은 내부공간과 그 것에 투영된 빛의 그림자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뚜렷하게 사물화 하는 범례를 제공한다. 2005년부터 정정주의 작업은 대형 미니어쳐 연작에서 보듯 더욱 정교해지고 스케일이 커지면서 모형의 실내공간과 외부공간의 소격을 줄여나가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2006년 리움미술관에서 있은 <아트스펙트럼 전>에 전시된 <빌딩>은 현대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양식들에서처럼 벽이 거의 모두 유리로 되어있는 6층 건물 2채의 내부에 이동하는 5개의 카메라를 설치하여 소형 형광등으로 가득 밝혀진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소형 형광등과 그것을 반사하는 매끈한 바닥처리를 통해 작가는 툭 트이고 텅 빈 넓은 건물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차가운 형광등 불빛을 손에 잡힐 듯이 재현해내고 있다. 리움의 블랙박스에서 전시된 이 작품은 어두운 공간을 배경으로 화려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도시의 건물들이 자아내는 환영과도 같은 풍경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나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처럼 차갑고도 몽환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어두운 전시장에 설치된 복수의 건물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작업을 통해 정정주는 보다 복합적이고 미묘한 시지각적 경험, 즉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거닐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스케일과 원근, 빛들의 중첩, 투명함과 불투명함의 교차 등에 더욱 커다란 관심을 보여주었다. 2005-6년 상하이 푸동의 건물군을 다룬 <젠다이 플라자> 연작과 2007-8년 나고야와 상하이 등을 모델로 제작한 <응시의 도시> 연작은 일종의 ‘상상도시’(ville imaginaire) 혹은 ‘드림랜드’(Dreamland)를 디스토피아처럼 재현한 작품들처럼 보인다. 미니어쳐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나 도시는 흡사 건축가의 타운 리모델링을 위한 밑그림처럼 보인다. 특히 후자의 작품에서는 도시 한가운데 UFO처럼 보이는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그로부터 회전하면서 쏘아져 내려오는 조명이 주변의 건물들 내부로 쏟아져 들어간다. (이 UFO를 닮은 건물은 2005년의 <덕이동 로데오 거리>에서도 등장한다.) 이 비현실적인 풍경들은 마치 뮤지컬 영화인 <42번 가>의 세트무대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흥분과 혹은 짐 캐리가 주연했던 <트루먼 쇼>에서처럼 세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기만(deception)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는 빛과 그것이 비춰질 수 있는 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구원인 동시에 바닥을 알 수 없는 좌절감을 자아낸다. 정정주의 실내에 드리우는 빛은 초기의 눈부신 태양광에서 이제 그 광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혹은 UFO가 비춰주는) 빛이 되었다. 빛과 그것의 간접적 지각 (플라톤의 우화나 카메라 옵스쿠라의 뒤집힌 반영)이 함축하는 바는 항상 그것의 원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보여주는 집’으로서의 간접적 무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필연적으로 제기된 문제일 것이다. 2007년의 <빌라 (수색로)>에서 정정주는 건물모형의 외벽을 함석으로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거의 관람객의 시선 높이에 다다를 만큼 큰 모형건물이며, 함석표면은 직접 주변의 빛을 반사하도록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안에 설치된 작은 프로젝터들은 건물 내부의 장면들을 각각의 실내 측면에 투사하도록 되어 있어 공간 내부의 바닥, 천장, 벽 등이 움직이는 그림자들로 일렁이도록 고안되었다. 건물의 모든 벽면들이 빛을 반사하는 이 건물은 흡사 빛과 그것이 드리우는 공간에 대해 끝없이 천착해 온 정정주의 내면의 풍경처럼 보인다. 어디에도 빛이 고정되는 장소는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투영되고 또 투영한다. 최초에 빛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움직임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출발했던 시각적 사유의 단초는 이제 빛의 파동, 그것이 만들어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그리고 그것에 무대를 제공하는 면들에 의해 서로 다른 관념적 순간들의 연속적 지각을 생산해내는 집-기계로 나아간다. 빛-공간의 면들-운동-시간적 분절로서의 집합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이제 이 전체를 통해 재조립되고 재구성되어 사유와 생산의 단위로, 시선으로, 기계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집은 신체이자 무대이자 뇌이자 유령이다. 그것의 내부에 시선을 집어넣는 일은 마치 그것에 존재의 근거, 혹은 그 모든 허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정정주의 작업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뻔뻔스러우면서도 감미롭다. 그는 마치 신이 모나드(monad)에 은총을 불어넣듯 작은 인형집(puppet house)에 카메라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빛이 있으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집요하게 조금씩 이 과정을 완성시켜 왔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집에서 우리의 그림자들을 보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항상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빛이기 때문이다. 집은 빛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은 단지 건축의 일반론만은 아닌 것이다.
Jeong Jeong Joo: The House Exists for the Sake of Light.
Professor Yoo Jin Sang
Kaywon School of Art and Design
There is nothing inside of the building. Revolving slowly, a surveillance camera is displaying all the sides. The light coming from the outer window is casting a shadow with exquisite patterns. A pure geometrical composition resting on the contrast of light and shadow lies on the perspective surfaces of the building seen through the black and white screen of the surveillance camera. In the meantime, all of a sudden something huge is found in motion out of the window. It is our eyes wide open that look into the interior of the building. A conflicting moment in perceiving the spacial scale takes place. That is because the interior body that we are looking into is the inside of a miniaturizeded structure that the surveillance camera is taking. The interior is far too realistic and stands out due to the conditions of light that surrounds the miniature. The vision is minimized eough to remain as only a dot in this small space, which leave our bodies wander in it as if we are a nonmaterial being. When we take a step back from the screen, we now recognize the screen is a kind of apparition. The source lies in a miniaturized structure that is located in front of the screen connected to the surveillance camera. It is in the interior space of the structure where the camera’s point of view, identical to the our vision, is placed. The presence of this miniature as an object is as modest as its size. When we find the structure relatively simple, we even think it is marvelous in comparison with the realism of the space materialized in the interior. Surely, there is something beyond realism here.
Jeong’s initial works dates from the ones created in Germany 1998. In those days he paid attention to materializing light shapes. When he observed rays of light, coming into the dorm, slowly moved as time goes by, he thought that he could realize or objectifies a variety of light reflections, and their inscriptions on the wall like symbols with specific meanings. For example, he reflected the light cast inside into specific shapes by using a mirror (Reflection of Sunlight Using a Mirror 1998, and Drawing Light Using Three Mirrors, 1998), or after installing a revolving lighting inside a wooden box and simulating the sunlight movement, he let viewers observe it on the monitor connected to the surveillance camera. His drawings in those days were recording on the plane the outlines of the light cast inside which was refracted by the structure.( Light Shape 1/ 2/ 3, 1998) In particular, he filled black in the section of the light like in the negative photographs. What is inferred from the initial works is tightly knitted interactive relationship between his architectural interior space and light. In other words, space is suggested as a condition for visualization and objectification of light, and in the long run, indirect vehicles such as a kind of mirror, reflection, and reverse between the visions to these structures and the ways of light’s being. While light is observed and efforts are made to capture continual changes of light, insubstantiality, and sur-obectification, separation or distanciation of space is suggested. For this the artist invented a ‘process’ to stage the interaction between light and space. In the same year, he arranged a detailed stage for a work “transforming sunlight from the window into a wooden structure at a specific time”, and installed it on the window of his school. He embodied a bunch of rays from the window at a specific time to be a structure and created a space that let the viewers get into the inside themselves. The viewers could open the door and go into the light since the light itself actually became substantiated as a sort of a concrete place. That the artist named it “Shauhaus” or “Showhouse”, is the fact that the viewers’ bodies are considered identical to their visions in this space. “House” is the very psychological space where he has observed the movements of light and shadows for a long time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place objectified as a milieu where light’s own vision stays. The vision is a point of view which observe the surroundings along the tracks of daily life inside the “house”, and as a post-subjectified spot, it is also a device that distanciate the inside into a post-territorialized stage.
The fact that light plays a crucial role in this process is revealed in his a series of miniature works, “House” and “a long house with moving light,” created in 1998 and 1999. In the two works, the artist installed electrical lightings inside the structure and had the light emit through the windows. Casting of light has since then been an essential theme in almost all of his works because miniaturized interior structures are transformed into dramatic immaterial spaces through shedding light. Since the 1999’s work, “Model”, almost every work has been produced according to this process. In other words, a miniature as a “Shauhaus”, and shapes of light cast from the outside are displayed through a surveillance camera fitted in the structure. The materialized structures are related to the artist’s own daily life and experiences, and the viewers look into a ‘reconstituted’ private space that consists of memories of space and light through situations of the inside on the monitor. These spaces are comprised of extremely simplified interior, without any details or objects. This might came from a modest life as a foreign student in Germany but the more possible reason is to realize a direct and pure interaction between the inner architectural composition and light. In “A High House” of 2000, a camera hung from the ceiling inside the structure, such as an elevator shaft, goes up and down, and through the monitor the viewers see the light, which emits from the entrance of the ground level, increasingly distant or close. By putting the movement of a motorized camera into the interaction between light and space, this vertigious work adds a device of “a moving subjective point of view” Using a motor added a dramatic realism to his works. Now the relationship of light and space is translated into diverse sensations through an illusion of “subjective viewing”, or movement of vision. “A Dorm” of 2000 exhibits five visions of movement which move back and forth toward the five identical windows inside the dorm. Movements of the five separate cameras generate delicate narratives of structural identity and psychological differences when the distinct cameras oversee the outside through the identical windows and shoot the scenes from the slightly different angles. In the same context, “A Gym” of 2001 displays though monitors the scenes of the inside which a camera, bouncing on the swing in a model structure of a gym, records and sends in a rapid pace. Through this work, the artist emphasizes movement as a factor overwhelming the relationship between light and space and visualizes the process where perception and its recognition, and the subtle delay of the two appear between the viewers’ visions and operation of a camera in a structural manner.
Since he came back to Korea, Jeong’s work has been focused on the inquiry of this process. In “Inner Brain” exhibited in the Gallery Brain Factory in 2003, a video camera was installed on the tip of a hexahedron revolving around three axes and made it scan the inside of the exhibition room. Vertigo-causing movements of the camera seem to show continuously a swaying gymnast’s momentary perceptions. As Henri Bergson indic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light, objet, and space, composes different collections every time movement is added to it. Every moment is basically different from the rest. The conditions of the relationship were not clearly defined in the slow movement of light but now they are visualized in the rapid motion of vision so that they could not be more definite than this. This rapid motion of camera is accelerated later and this proceeds to reveal the basic differences of each collection by closing the gap between the spaces through articulation.
In “Exhibiting a Pleasant Crafts Shop” and “City Museum of Art” of 2003, nine cameras were installed at different angles in the interior of an unfinished structure. Eachfootage recorded by the cameras was displayed on the monitor successively by a switcher and the viewers were able to watch every corner of the structure rapidly as if they were in the surveillance control room. In these spaces casting shadows into the inside by the outside lighting is dealt with in details and the nature of spaces and the characteristics of camera visions were emphasized. Psychological roles in shading, as if they could be witnessed in the Alfred Hitchcock’s films, go beyond perspectives of light coming from a frame of a structure or a window and lead to the factors which imply the direction of vision shooting out all directions from the center of a panoptic structure as in “A Prison at the West Gate.” In the latter case, the patterns of the light coming in through the window bars of the prison provide a model example in which the interior space and the shadows of the light cast on it interact intimately and are materialized clearly. Since 2005, as witnessed in successive miniature works, Jeong’s works have become more elaborated and bigger in scale and lessened the distanciation between the inside and the outside of the models. In “Building”, displayed in the “the Exhibition of Art Spectrum” in the Leeum, Samsung Museum of Art in 2006, the artist installed five cameras moving inside the two six-storied buildings which were covered with glass on the almost entire surface, as witnessed in most of the modern architecture, and showed the space lit with small-sized fluorescent lights. Though a huge number of lights and sleek flooring that reflects them, he realizes the cold fluorescent light filled with the spacious and empty interior of the buildings as if we can touch it. This work, exhibited in the Black box of the Leeum, shows a scene like a phantom created by the glamorously lit buildings in the city on the dark background and captures it in a cold and dreamy fashion, as in the Edward Hopper’s paintings or in the Paul Auster’s novels.
In the work of filling light in the multiple buildings installed in the dark exhibition room, the artist expressed interest in more complex and delicate visual and perceptive experiences, such as a variety of scales and perspectives, piled-up lights, and crossing of transparency and opaqueness, which you can get while walking along the buildings of the city. Successive works, “Zendai Plaza” describing a group of buildings in Pudon, Shanghai in 2005-6, and “City of Gaze,” modeled after Nagoya and Shanghai seem to realize “ville imaginaire” or “Dreamland” as a dystopia. The village or the city constituting miniatures looks like an architect’s rough sketch for a town remodeling. In particular, in the latter work a UFO-like building is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city and the lighting, in revolution, shoots down from it to the inside of the peripheral buildings. (This UFO-like building also appears in “Deok-i Dong Rodeo Street” of 2005.) This unrealistic scenes are placed somewhere between an extreme excitement on the stage of the musical “The 42nd Street” and deception that we can never know the depth of the world in a Jim Carry starring movie, “The Truman Show.” The world is made up of light and faces on which the light is reflected. That is redemption and at the same time it creates abysmal frustration. The light Jeong throws in the interior of a structure now changed from the glaring sunlight to the light of which origin is unknown or which a UFO shines. The implications of light and its indirect perception (Plato’s allegory and reversed images of camera obscura) leads to questions to its origins at all times. The questions might be raised necessarily when he started to create an indirect stage as in “Shauhaus.” In “Villa (Susaekno)” of 2007, he covered the outside surface of the structure with tin sheet. This work is so huge that the viewers vision can barely reach the top and the tin-covered surface exposes itself to reflect all the light surrounding the building. The projectors inside the building throw images of the inside on to the interior facades and were designed to have shadows ruffling on the floor, ceiling, and walls. This structure where all the walls reflect the light seems to be the artist’s own inner world who has been researching on light and its cast space. There is nowhere light is fixed. It is continuously moving, reflecting and being reflected. The clues of visual thoughts started from the inspiration by slow and impalpable movement and moved on to a house-machine which creates successive perceptions of separate notional moments through the wave of light, its incessantly changing milieu, and its stage, in other words faces of the structure. The process comprising of light, faces of the spaces, movement, and a group of time articulation in order now is reassembled and restructured within the entire body, and embodied as a unit of thoughts and production, visions, and machines.
The house can be a body, a stage, a brain, or an apparition. Putting visions in the inside is to legitimize the grounds of the existence or all the fictions. Jeong’s work is mellow as well as blunt in that he presents the fact to us directly. He puts a camera into the puppet house as if God imbues monad with grace. And he says “Let there be light.” And he has been slowly fulfilling this mission in a persistent way. We do not know for sure what makes us watch our shadows in this house. What casts a shadow is always the light of which source is unknown. The house exists for the sake of light. This is not a generality only for architecture.
세계의 축소판 ․ 가상 실내의 파노라마 - 정정주가 구축하는 공간
강 수 미 (미학자)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거인국이나 소인국에 대한 상상은 인간이 그만큼 자신의 신체를 기준으로 외부세계를 잰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나 당신처럼 2 미터가 채 안되는 사람들이 지각하는 세계의 크기 비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반대로 그 익숙한 비례에서 크게 벗어난 대상을 상상하거나 만들어 본다. 때로는 아주 작게 만들어 위력적인 시선으로 즐기고, 때로는 엄청 크게 이미지화해서 거대함이 주는 숭고에 기꺼이 삽입되고자 한다. 예컨대 1 밀리미터 단위로 만들어진 정교한 미니어처를 만지는 즐거움과 거대한 해일이 도시 전체를 덮어 씌워 버리는 재난 영화를 보며 느끼는 공포-감상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기준으로 세계를 지각하는 인과관계 속에서 우리는 ‘공간’을 정의한다. 생활감각에서 공간은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것’이다. 나를 받쳐주고 둘러쌀 정도로 넓고 큰 공간. 내가 그 안에서 움직이는 공간. 공간을 다루는 미술가는 분명 우리의 이러한 상식적 공간지각의 의표를 찌르거나 역설적으로 뒤집음으로써 작품의 성공을 꾀할 것이다.
1. 공간-신체-지각의 두 차원들
정정주는 특정 공간에 대한 건축모델을 만들어 우리 ‘시선 아래’ 볼 만한 것으로 펼쳐 놓는다. 그와 동시에 바로 그 건축모델의 내부를 찍은 영상이미지를 우리 ‘눈앞’에 까뒤집어 투사한다. 말하자면 전자는 인간 아래 세계의 축소판(miniature)이고, 후자는 그 미니어처의 실재 내부공간이자 인간을 둘러싼 가상의 한 공간 이미지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것으로서의 공간을 정정주가 만든 건축모델을 통해 축소해서 파악하고, 우리보다 훨씬 작아서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그 세계의 축소판 내부를 영상이미지를 통해 대리 체험한다. 이를 소인국과 거인국에 떨어진 걸리버의 경험으로 은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모델과 영상이 연동하는 정정주의 특수한 공간 작업 속에서 재미있는 내포(內包)와 외포(外包) 관계의 ‘공간-신체-지각 차원’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 두 차원을 가진 공간 관계를 양말(혹은 장갑)로 생각해 보면, 당장 눈앞에 정정주의 작품이 없어도 어떤 선명한 감각이 우리에게 붙잡힐 듯 하다. 납작 붙어 있던 양말에 손을 집어넣으면 꼼지락거릴 정도의 공간이 생겨나는데, 그 공간은 눈에는 보이지 않고 손이 촉감으로 느끼는 공간이다. 어느 순간 급하게 손을 빼내면 그 속 공간은 확 뒤집혀 밖 공간이 되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이 만졌던 공간감은 시각적 표면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안이자 밖인 공간, 비가시성이자 가시성의 지각을 가능케 해 주는 형식과 내용이 한 몸인 구조. 그 구조가 만드는 두 차원과 가변적 전환이, 내가 양말의 메타포를 빌어 제시하고 싶은 정정주 작품의 핵심이다. 어린아이라면 ‘이해’가 아니라 ‘감각’으로 이 단순하면서도 교묘한 구조와 그 전환이 주는 재미를 알아채고 반복할 것이다. 반면 어른은 정정주가 만든 건축모델을 조망하면서, 그 속 공간을 더듬는 영상이미지로 축소판 세계 내부를 시각적으로 대리체험하면서, 발터 벤야민의 다음과 같은 인식에 도달할 수도 있다. “형식과 내용, 외피와 외피에 덮여 숨겨진 것, ‘선물’과 주머니는 하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조금 더 나아가, 정정주 작품들을 예증으로 하여 감각과 인식이 지각이라는 소실점에 맺힌다는 것, 혹은 다른 두 차원이 연동하며 전환된다는 것을 덧붙여 주장하고 싶다.
2. 모델은 인간보다 작고, 이미지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정정주가 2001년 독일에서 했던 전시의 자료영상 중 한 장면에는, 감상자가 그의 작품을 즐기고 받아들이는 실제 양상을 드러낸 상징적 장면이 있다. 기숙사 5개 방을 최소한으로 재현한 작은 모델과 그 내부 이미지를 텔레비전 모니터로 보고 있던 한 남자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자꾸 모델 ‘안’이나 모니터 ‘뒤’를 기웃거린다. 우리는 그의 행동을 모델 내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통해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모델 안에,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자신을 반대편(모형 기숙사 실내, 우리가 그를 보고 있는 자리)에서 투영하고 있는 이미지 뒤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다. 모델 안에 장착된 카메라는 하나의 눈이 되어 그(감상자)-우리(그의 관찰자)-그(감상자 자신의 영상이자 카메라가 보는 것)로 이어지는 ‘시선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정정주가 만드는 건축모델은 작은 가짜 공간이지만, 그 내부를 찍은 이미지는 사실성이 넘치기 때문에 영상만 보고는 그 공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큰 공간이라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료영상의 한 남자처럼 자꾸 모델과 이미지 뒤로 가보게 되는 것인데, 당연한 얘기지만 모델은 작아서 들어갈 수 없고, 영상이미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보는 이가 보이는 이이며, 보는 자리는 동시에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된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 일망타진의 판옵티콘(panopticon)이 벤담식의 위계적 원형감옥으로만 실현되거나 기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앞서 양말을 들어 논했듯이 공간의 성질과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의 감각은 부단히 전도될 수 있고, 그로인해 우리의 지각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정정주 작업이 우리 인식에 주는 자극이다. 그러나 분명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 공간이 아니라 모델로서의 공간이 주는 자극이었고, 우리 몸 전체가 아니라 우리 인식에 주는 자극이었다.
3. 상황에서 운동으로
<거실>, <높은 집>, <기숙사>, <거리 매점>등 정정주는 비교적 하나로 떨어지는 공간을 건축모델로 만들고, 그 내부 영상을 외부로 프로젝션하는 작업을 해 왔다. 다소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2003년 제작 전시한 서울시립미술관 모델이나 서대문 형무소 모델 또한 단일한 공간이었고, 감상자는 직접 그 시뮬레이션 된 공간 속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부 카메라가 운동하며 우리 눈앞에 송출하는 영상을 ‘마치 자신이 움직이듯’ 느끼며 작품 밖에서 보아야 했다. 그리고 전시장 어딘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서 그렇게 모델과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또 다른 영상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감상자는 작품 안에서 ‘운동’하기보다는 작품이 투영하는 ‘상황’을 작품 밖에서 시각적으로만 감상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최근작 <일산 덕이동 로데오거리> 또한 전시방식과 그 감상의 방식 면에서 전작들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건축모델의 크기가 상당히 커지고, 한 건축물의 모형이 아니라 여러 건축물이 블록(block)을 이루는 방식으로 전시되기 때문에 감상자의 신체적 경험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지구에 불시착한 괴 비행선처럼 생긴 신도시의 상가 건물이 중심에 놓인 거리 모델을 조망하다가, 인근 체육관이나 편의점 모델로 이동하면서 경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광주신세계 갤러리 개인전에 타이틀을 <바디스케이프(Bodyscape)>로 설정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body와 scape를 조어한 이 전시 제목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바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특히 내가 주목하는 바는 정정주의 작품들이 보는 이의 신체보다는 카메라가 비추는 풍경 혹은 상황에 집중했던 데서 신체와 풍경(상황)이 하나로 결합되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덕이동 로데오거리와 편의점과 체육관이 현실과는 또 다르게 건축모델로서 블록을 이루고 있는 전시장에서 감상자는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그 풍경을 조망만 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세부를 보기 위해 또는 그 모델과 영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메커니즘을 파악해 보기 위해, 그리고 모델들이 일종의 세트를 이루고 있는 장소를 거닐면서, 블록화 된 작품 속으로 뛰어든다. 일순간 감상자의 신체 또한 작품의 일부로 편입되며, 그 곳을 비추고 있는 영상이미지 속에서 풍경의 일부로 녹아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바디스케이프>는 신체/풍경으로 분절되지 않고, 어느 쪽이 주체인지 규정될 수 없는 상태에서 부단히 전도되고 변화하는 작품이 된다. 앞서 양말의 뒤집힘으로 돌아가서, 그 양말의 안과 밖 공간을 전도시켰던 것, 양말의 겉껍질과 그것이 감싸고 있는 것(혹은 형식과 내용)이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케 한 것이 ‘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그리고 정정주가 만드는 ‘예술작품’이 ―모델이 만드는 가짜공간과 그 공간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이미지― 실재와 가상을 넘나들도록 하는 것, 작품이 하나의 사물이자 풍경이자 살아있는 현실이 되도록 하는 주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바로 당신, 정정주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 감상자의 신체이다.
Miniature of the World • Panorama in Fictional Interior – Space Constructed by Jeong Jeong Ju
Imaginations of a land of giants or pigmies from The Three Worlds of Gulliver tell us that human measure their exterior world based on their physical bodies. There exists a size ratio for the world recognized by people under 2 meters like yourself and I. So human imagine or create subjects largely out of this accustomed size ratio on the opposite side. Sometimes they enjoy powerful eyes by making it small, or wish to be input into the sublimity bigness gladly by making image of a huge ratio. For example, the joy of touching an exquisite miniature made in 1mm unit and fear-impression of watching a disaster movie where a tidal wave attacks a whole city would give us pleasure. We define ‘space’ in cause and effect relation recognizing the world based on our bodies. Space is ‘something large surrounding us’ in living livelihood senses. A space wide and large enough to support and surround me, and that I move in; artist who handles space would plan success in work by presenting unexpectedness in such common space recognition or by turning over paradoxically.
1. Two dimensions of Space-Body-Recognition
Jeong Jeong Ju spreads out something worthy of seeing ‘under our eyesight’ by making constructive model in a certain space. At once, he projects images taken from interior of this constructive model by turning them over in ‘front of our eyes’. In other words, the former is a miniature of the world under human, and the latter is the actual interior of this miniature and a certain image of cyber space surrounding human. We understand space as something large surrounding us by reducing constructive model made by Jeong Jeong Ju, and indirectly experience images of the miniature interior that we cannot enter due to its excessively small size. This can be compared to Gulliver’s experiences in the world of giants or pigmies. More importantly, an interesting ‘dimension of space-body-recognition’ in connotation and denotation relationship occurs in a special space work of Jeong Jeong Ju where constructive mode and image connect. Considering the relation of two dimensions as a sock (or a glove), we might hold on to a certain clear sensation without a work of Jeong Jeong Ju in front of our eyes. Sticking a hand into a sock sticking flat to each side makes a space just enough to move sluggishly, and this space is one that cannot be seen by only felt. Suddenly pulling out that hand at once allows us to see the interior as the sock is turned over. The sense of space that can be felt only with hands suddenly transfers into visual surface in a matter of seconds. A structure where inside is outside, equality of form and content that able us to recognition of visibility and un-visibility at once, and the various transfer of transfer made by this structure is the core of works by Jeong Jeong Ju that I would like to propose borrowing a metaphor about a sock. A child can realize the fun and transference of this structure that is tactful yet simple only with ‘sense’ rather than ‘understanding’, and repeat them. On the other hand, an adult would view the constructive model made by Jeong Jeong Ju, indirectly experience interior of the minimized world with vision through images by groping it, and might reach to recognition of Walter Benjamin: “form and content, crust and something covered under the crust, and ‘present’ and pouch is one.” Moreover, I would like to protest that sensation and recognition meet at a disappearing point of perception exemplifying works of Jeong Jeong Ju, or by adding that two different dimensions transfer by connecting to each other.
2. Model is smaller than human, and there is nothing behind an image.
One certain scene from exhibition images by Jeong Jeong Ju at Germany in 2001 includes a symbolic image revealing actual image of an appreciator enjoying and accepting his work. A man viewing a miniature model materializing 5 dormitory rooms as small as possible through a television monitor frequently snooping around ‘inside’ of the model and ‘behind’ the monitor with an interested expression on his face. We can observe his actions through an observation camera set up inside the model, which shows the man wondering what exists behind the image projecting on his opposite side (inside the dormitory model, where we are looking at him)and what is in this excessively small model compared to our physical size. The camera set up inside the model is creating ‘link of visions’ connecting him (appreciator)-us (observer)-him (an image of appreciator himself and what the camera is filming) as an eye. Furthermore, the constructive model made by Jeong Jeong Ju may be a small unreal space, but we misunderstand that the interior is actually a large space surrounding oneself because of the reality images provide. Therefore, the man in the image keeps going behind the model and the image, but he cannot enter the model since it is so small, and there is nothing behind the image. One who sees is the one who can be seen, the spot to see is also a spot exposed to others’ sight, and panopticon for making a wholesale arrest can be materialized but not function as hierarchy prototype prison of Bentham.
As mentioned above through a sock, the fact that the property of space and our sense to accept it can be constantly conducted and our perception constantly changing due therefore, is the stimulation works of Jeong Jeong Ju give to our recognition. However, it was clearly a stimulation given by space as mode, not as reality to some point, and stimulation given to our recognition and not on our physical body.
3. From situation to movement
Jeong Jeong Ju has made constructive models with spaces comparably separable as one such as <living room>, <house on a high floor>, <dormitory>, <convenience store on the street>, and has done works projecting interior images into exterior. Despite many or few difference in size, model of Seoul Museum of Art, and Seodaemun Independent Park (formerly referred to as Seoul Prison) produced and exhibited at 2003 were also single space, and the viewers had to see the work outside of it through images transferred in front of our eyes while inside camera moves around making us feel ‘as if we were moving’, rather than moving in a simulated space. And we can see ourselves staring into the model and images through a camera set up somewhere in the exhibition center in another image. In other words, the viewer visually viewed the ‘situation’ where the work is projected outside the work, rather than to ‘move’ around in the work itself. His recent work, <Ilsan Duki-dong Rodeo Street> was also not so different from his former works in method of exhibition and appreciation. Nevertheless, this piece of work provided different physical experience to the appreciators since it was larger in size, and was exhibited in blocks, not in a certain constructive pattern. For example, one can make his/her course by looking at a commercial building that looks like a UFO forced to land on Earth in the middle of a busy street, and move to a model of convenience store or gym nearby.
Therefore, <Bodyscape> being the title for the exhibition Jeong Jeong Ju held at Gwangju Shinsegae Gallery seems reasonable. What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coinage of ‘body’ and ‘scape’ is suggesting to us can be interpreted in many ways. However, the one I am strongly focusing on is that works of Jeong Jeong Ju have progressed from emphasis on situation or scenery, rather than physical body, shown by a camera, to a ‘movement’ unifying body and scenery (situation) into one. The appreciator does not merely observe the scenery from far away in an exhibition where Dukkidong Rodeo street, convenience store, and gym is constituting blocks as a constructive model, different from reality. He/she jumps into the work constituted of blocks by walking in it where models are creating a sort of set to understand the mechanism of model and its images, or to see the details. At one point, the body of the appreciator is entered as a part of the work, and melts into a part of the scenery amongst the image showing that place. Therefore, <Bodyscape> is not disconnected into body/scenery, and becomes a work that constantly changes and conducts in a condition who or shat the main body is. Going back to the sock mentioned earlier, recollect that it was the ‘hand’ that conducted the inside and outside space of the sock, and allowed to realize that the crust of the sock and what is covering it (or form and content) is actually one. Let’s think how the ‘artistic works’ of Jeong Jeong Ju – the fake space made by the model, and an image showing the scenery of that space – is allowed to resort frequently, and what the main body is to make the work as a material, scenery, and vivid reality. It is none the other but you, your body that walked into the work of Jeong Jeong Ju.
Kang, Su-Mi (Aesthetics & Art critic)
이은주 (전시기획자, 미술사학자)
- 토니 스미드(Tony Smith) -
Space, Gaze and Perception
Eunjoo Lee (Curator)
“In a dark night, a hill far away, only haystacks, towers, flames, and fragmentary colors occasionally were appearing in a field, where only a black pavement stretched out with no signs or lights, there, a reality seemed to exist that has not been expressed in art in any way.” Tony Smith
We all have experienced of being drawn to a place without a specific reason. Whenever I drive through Jamsu Bridge I become fascinated by special sentiments constituting the space; void space, bleak sensations, grey graduations, huge scale, wind, and just enough sunlight. As my body physically senses these elements quickly come and go, I intensely experience a feeling being alive. It is perhaps a kind of existential experience aroused from going through it intensely, almost experiencing tactile sensations. An attraction towards a specific space is a matter of one’s taste within cultural codes; it differs to preference. For example, one liking espresso with cream on top is a different matter. This dose not refers to decorative elements. This is an attraction towards an aura that one in the presence of the space experiences.
When I first came across Jeong’s work at Sagan Gallery early this year, I could recall few spaces related to my own experience, and this soon became an interest in the artist. Although the space he has created consisted of least possible elements; four walls, windows, lights, sounds, and gaze I could sense extremely intense and physiological energy pressurizing the spectator. The space was not simply formative or architectural, but felt very much alive; as if potential events were intensely saturated, anticipating for an event to happen. It was not a singular space like a still picture contemplating indifferently, isolating a spectator; it seemed more like a ‘situational’ space actively involving spectators. This is probably because of the fact that most spaces Jeong uses in his work are where he has actually lived in; the living room, toilet, gymnasium, and dormitory are all related to the experience of the artist himself. He represents authentic atmosphere and specific auras these spaces give out. He arranges basic architectural elements elaborately: the size of the room, structure, the placement of the window, and the intensity of the light, then creates aura in three dimensional structures. What is most interesting in his work is the involvement of the moving gaze of camera. It is a way to search for an organic relationship between physical placement and perception. Because it is only realized by spectator’s perception, special aura can not be an independent thing on its own. Therefore through what visual it is experienced is inevitably the most important element in his work. In his previous works he has created models of the real space, and by installing a camera inside he allowed spectators to gain information only through camera’s gaze. Spectator desires for a full understating, but faces physical impossibility of entering into the space. He induces them to actively unify themselves to camera’s gaze for a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explosive energy of enclosed space in Jeong’s models pressurize spectators, and create an experience of claustrophobia. That is because camera’s and spectator’s gazes become one at a certain point, and create an emphatic affect on spectators for them to feel as if they are inside the model. Therefore the camera in this situation is not an authoritarian media like the surveillance camera in Big Brothers but a subjective tool and extended eyes. What is more interesting is the fact that as the awareness of spectator and camera’s gaze unify and separate, an experience of two different dimensions are achieved. The experience of being inside and outside and coexistence of two different dimensions bring a momentary confusion of whether one is inside or outside. On top of these factors the size differences of the model and coexistence of two different dimensions of the real and simulated space grant uncanny feelings like the one in Alice in Wonderland. However by deconstructing spatial coordinates the placement of double gazes in his work dose not aim for disruption of subject. His works are restored as an awareness of ‘I’, endlessly confronting a real and solid space itself through synthetic gazes.
As if to reflect artist’s on going interests on spatial existence, for this exhibition he aims for the exhibition space itself, the Brain Factory. The spectator is now able to enter into the space and perceive it on the same dimension. More elaborately planned camera’s gaze gains natural movement of human eyes, through up and down movements and rotating motions. Very softly, slowly and continuously moving camera’s gaze contacts surface of the space of Brain Factory. Spectator perceives the reality of the space more sensitively through images created by the intimate relationship between the space and camera. Jeong’s work, through organic connection with the camera’s gaze, does bring touch, which is related to the inner truth of a space that our conventional eyes couldn’t see anymore, back to life. The fact that documentary films does not feel like our life even though it pictures our lives does not lie on the dramatic effect taken by the media, but it lies on the fact that our closed eyes that cannot see things as it opens up and sees through another eye. Likewise Jeong’s work suggests deeper recognition on a space through other receptive eyes. This is because space is not a still picture but rather a moving sequence and parts of our lives, and it is also an organic environment where my very existence is closely 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