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네모 동그라미씨! 반갑습니다.^^
김희랑 _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가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 중의 미미한 개체로서의 ‘나’, 우주에서 보면 다 똑같아 보일지라도 ‘나’는 다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존재이다. 뛰어나고 돋보이는 사람은 아닐지언정 한 사람 한 사람은 특별한 존재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이조흠은 익숙한 만화 캐릭터들의 배열 속에 등을 돌리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삶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불안한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줘 왔다.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안의 미미한 존재인 개인들에 대한 의미부여에서 시작한 social 시리즈에서, 개인은 작가 자신이자 이 시대의 수많은 개개인들의 자화상이다. 특히 대학 졸업 즈음 시작했던 이 작업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청춘의 질주, 열정 속에서 발현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하는 열망을 내재하고 있다. 이조흠이 차용한 친근하고 유쾌 발랄한 캐릭터들은 성공과 물질에 대한 강박증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결핍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가볍고 유치하며 즐거움을 제공해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들은 뒤통수를 보이고 이질적으로 박혀 있는 한 남자로 인해 그다지 녹록치 않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으로 인식된다. 또한 만화 캐릭터들의 무한 반복의 집적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의 견고함과 그 속에서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조흠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세대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조흠과 같이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소위 N세대(net generation), 88만원 세대, 공포세대 등으로 부른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IMF 경제위기 때 생존문제를 고뇌하고 좌절하던 부모로부터 공포를 물려받은 세대이다. 즉 IMF 경제위기를 겪은 부모들은 일류대학과 출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자녀들에게 전가시킨다. 따라서 1980년대 출생한 이들은 어려서부터 과열경쟁, 공부하는 기계와 같은 삶, 성공과 출세를 최우선시하는 가치관을 습득하게 된다. 철저한 관리와 통제 속에 훈육되어 온 이들은 자기 주도적 삶보다는 의존적이며 부당한 요구와 압력에 순응하는데 더 길들여져 있다. 또한 이들은 컴퓨터, 디지털, 모바일 등 가상현실에 익숙해진 세대이다.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탈출구로 삼고, 아바타로 자신의 대인관계, 자유, 통제력 등을 실현해 나간다. 게다가 대학에서는 학점경쟁, 스펙 경쟁 속에 20대를 보내지만 그들을 맞이해 주는 건 비정규직 혹은 실업이라는 가혹한 현실뿐이다. 이러한 세대 특성적 배경이 이조흠 작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행복했던 유년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 대한 향수,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맺음의 불편함과 두려움, 고단한 현실에서 오는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등이 이조흠 작업의 단초라 할 수 있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의 질문으로 확장되어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성과 집단 속에서 개체로서 개인의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3types of humans’, ‘social-ego’ 사진 연작, LED라이트 작업을 통해 그간 보여주었던 회화형식에서 벗어나 사진과 영상, LED 조명 등으로 표현매체를 확장시켰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세련된 빛을 내뿜는 LED라이트 작업이 눈에 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의 형태는 손톱만한 작은 수많은 전구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전구들은 각각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모아진 것들이다. 그간 보여 주었던 수많은 캐릭터가 이번에는 LED 전구로 대체된 것으로써 하나하나의 개체가 모여 거대한 사회의 특성을 형성해 낸다는 의미와 더불어 군중의 긍정적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아날로그 방식의 수고로움을 통해 아무리 편리하고 스마트한 테크놀로지 시대라 할지라도 세상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적 감성을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social-ego’ 작품의 경우 기존 회화의 내용을 유지한 채 개개인이 지닌 특수성과 다양성에 관한 탐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영상작품 ‘3types of humans’는 집단 속에서 개개인들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서로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표현된 개개인들의 깜박이는 눈과 웃는 입모양을 통해 생명력, 즉 삶에 대한 긍정적 의식이 반영되고, 일률적 반복적 모양새이지만 하나하나를 클로즈업시킴으로써 개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 준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과거 유쾌 발랄한 캐릭터들 이면에 드리워진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나 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이번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씨’의 발견이다. 대중소비사회, 이미지 과잉시대로 대별되는 요즈음 유명스타나 친숙한 만화의 캐릭터나 상업 광고 등의 이미지들은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팝아트 선전 아래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캐릭터를 차용하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쉽게도 넘쳐나는 캐릭터들 속에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어디서 본 듯’ 혹은 ‘거기서 거기인 듯’ 개성적이거나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기존 만화나 상품 캐릭터를 차용해 왔던 이조흠 역시 이번 전시에서 ‘세모, 네모, 동그라미’라는 이조흠표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조흠의 찾아낸 ‘세모 네모 동그라미’ 친구들은 사물의 가장 근원적 본질을 원기둥과 직육면체로 파악하려 했던 세쟌의 시도를 떠오르게 한다. 가장 단순하고 익숙한 도형 안에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함축되어 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을 단순화시켰을 때 얻어지는 도형이자 누구에게나 익숙하여 쉬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린 시절 처음 그리기 시작한 도형으로서 때 묻지 않은 인간의 순수성과도 연관된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씨’라는 단순하지만 참신한 캐릭터의 발견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준 가장 의미 있는 성과라 말하고 싶다.
청년작가 이조흠의 social 시리즈도 어느덧 7년차에 접어들어 다듬어지고 심화되어 왔다. 급격한 변화는 자칫 위험스럽겠지만 끊임없는 변화의 모색과 실험은 청년작가로서 이조흠이 잊지 말아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세모 네모 동그라미씨’와 함께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그 친구들과 함께 이조흠이 어떻게 성장해 갈지 즐거운 기대를 해 본다.
1) 나태주의 시, 풀꽃
2) N세대(net generation)1977년부터 1997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해서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디지털 문명 세대를 말한다.
3) 김태형은 「트라우마 한국사회」(서해문집, 2013)에서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각 세대별 트라우마의 원인과 문제점,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를 공포세대라 명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