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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美를 논한다``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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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를 논한다`` 중 발췌

 

이경호의 작품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말할 수 있겠다. 이경호의 디지탈문의 경우에는 관람객의 존재는 작품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비로소 작동하는 순간은 관객이 이 작품을 만지는 순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면과 카메라 사이의 허공을 무언가가 스치는 순간이 비로소 작품이 완결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카메라에 비친 관람객의 손의 이미지와 프로젝터를 통해서 벽에 투사되는 이미지의 무한 피드백이다. 이 경우에 관람객이 보는 이미지는 자신의 손이면서, 동시에 달이고, 실제로는 카메라와 벽이 만들어낸 무한 반복의 순환 구조이다. 이것 역시 자연의 순환구조를 그대로 차영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는 그 구조가 작품의 전면에 형상화되어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형상은 허상이라고 할 만한 둥그런 영상, 즉 작가가 디지털 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런 허상의 형상화는 달빛 소나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카메라는 뻥튀기 기계를 비추고, 뻥튀기 기계는 달덩어리 같은 뻥튀기를 튀겨낸다. 뻥튀기 기계가 내는 소리는 작가에 의해서 소나타로 이름 붙여진다. 관객은 뻥튀기 기계가 연주하는 소나타를 들으며 달의 대량 생산 과정을 확대 촬영한 영상을 비디오카메라와 프로젝터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감상하게 된다. 비단 뻥튀기 기계의 숨겨진 의미를 연상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이 노골적으로 구체제의 미학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은 능청맞게 달빛소나타일 뿐이라고 서정적으로 을 친다. 역시 이런 일련의 감상도 그 현장에 참여한 감상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경호는 이 달빛소나타를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을 때는 관람객이 프라다 봉지에 뻥튀기를 가져갈 수 있게 하기도 했다.

 

-미디어 작가, 미술평론가 박 진 호-

 

 

교수신문 지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아방가르드 로맨틱

   

박 진 호

(화가, 비디오 아티스트)

 

  

아방가르드 로맨틱 이경호를 소개한다.

낭만적인 전위예술가라고 해도 뜻이 통할 것을 굳이 아방가르드 로맨틱이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전위예술가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가? 벌거벗고, 소리를 지르고, 붉은 물감 혹은 피를 뿌리고, 광기의 음악, 광기의 북, 뛰고 소리치고, 발광을 하는 이미지가 우선 떠오를 것이다. 좋게 말해서 전위예술가고 나쁘게 말하자면 예술깡패다. 이경호도 어려서 숱하게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고, 기타와 텔레비전을 부쉈다. 이런 면에서만 보자면 웬만한 전위보다는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이 없는 배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맨틱이라는 수사를 방점 두 서너 개 찍어가며 붙여 부르는 이유는, 그가 사랑했고 또, 지금 사랑하는 것이 커더란 예술지상주의의 고함소리보다는 인간에 대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20064월 갤러리 <세줄>에서 이경호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여행자. 이경호는 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사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경호가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위적이다. 특히 매체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매체를 다룬다는 것은 매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람이 백남준이다. 백남준은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피아노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다루어 좋은 혹은 다른 음악을 하는가를 생각할 때 그것을 때려 부수는 소리도 듣기 좋다는 것을 보여준 작가다. 백남준은 예술가들의 첨단 매체에 대한 고포를 치료한 사람이다. TV로 조각을 하건 컴퓨터로 축구를 하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이경호는 그런 관점에서 백남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그 백남준에게 바치는 작품이 바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백남준 선생님을 기리며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올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백남준에게 바치는 작품들 중 당연 열 손가락 중에 하나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어둠 속에 조명 하나가 러닝머신을 비추고 있다. 러닝머신 위엔 고물 바이올린 한 대가 질질 끌려가고 있다. 바이올린이 러닝머신의 고무판에 끌리며 낮은 소리를 낸다.

1961년 뉴욕 브루클린 거리에서 백남준이 바이올린을 줄로 매달아 끌고 다녔던 퍼포먼스땅에 끌리는 바이올린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학생시절 처음으로 한 미술작업이 아끼던 기타에 물감을 채워놓고 TV를 부수는 퍼포먼스였다는 작가는 존경하는 백남준과 그 퍼포먼스에 대한 오마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백남준 대신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러닝머신은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백남준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또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에 끌려 다니는 우리의 모습은 항상 같은 속도로 입력되어 있는 러닝머신 위의 바이올린과 겹쳐지면서, 바이올린이 끌리며 내는 끽끽~’ 소리는 일상의 노곤함에 지르는 우리의 한숨과 비명 같다. 게다가 복잡한 이론과 개념을 덧입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무거워져 버린 현대 미술의 살을 빼자는 익살까지 담아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재담가 중에 한 사람인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를 마무리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경호는 여행자를 주제로 이렇듯 러닝머신, 바이올린, 빈 비닐봉투, 버려진 포장마차, 포클레인 등을 가지고 이경호의 주제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인간 이경호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것은 작가 이경호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실험적인 것에 비해서는 너무나 비현실적일 정도로 소시민적이다. 다만 필자가 이경호의 일련의 작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소시민적인 아이디어를 나름대로 첨단매체라고 하는 비디오 작업과 설치작업을 통해서 구현하는 것, 또 그 구현의 과정에서 비디오카메라와 프로젝터, 오브제 등을 이용하는 방식이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하여 삶과 예술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경지까지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경호가 매체를 다루는 방식은 일견 매우 즉물적이고 즉각적이어서 쉽고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를 아우르고 조율하는 이경호의 연출력에 힘입어 관객은 순간순간 아하 하고 무릎을 치는 경탄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크게 비디오 설치 4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앞서 언급한 백남준을 추모하여 만든 백남준을 기리며...같은 공간에 놓여진 버려진 시간들이층에 전시된 여행자, 그리고 풍경.

그 중버려진 시간들은 불시에 마주치게 되는 풍경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자동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거울 속의 관상동맥은, 2년 동안 버려져 있던 포장마차를 휘감은 나뭇가지로 변화하고, 다시 그 장소에 머물렀던 자들의 그림자로, 기억들로 연결된다.

작가는 전시장의 여러 가지 요소-2년간 방치된 포장마차, 노숙자들의 모습, 포장마차에 비친 취객들의 그림자 영상과 음향, 잡음과 함께 우연히 맞춰진 주파수로 기독교방송이 나오는 작은 라디오, 옛날 화장실 등으로 사용 되었을 법한 작은 붉은 등, 작가의 심장 주변을 관상동맥 조영술로 촬영한 영상-등을 공간 연출하듯 배치시켜 놓았다.

작가는 이 전시를 준비하던 중 심각한 심장질환을 발견하여 전시 시작 이틀 전에 심장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던 기간이 곧 수술을 준비하던 기간이었고, 자연히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하게 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마치 유서를 써내려가듯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하니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던 심상찮은 느낌은 그것에 연유한 것이리라. 이런 점이 항상 일정 정도의 유머러스한 요소를 끌어내던 이경호의 종전에 작품들에 비해 증후하게 느껴졌던 이유이리라.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서도 웃음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었지만, 즐거워 웃는 웃음이라기보다 페이소스가 담긴 미소로 느껴진다.

2층의 전시는 이경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제일 먼저 눈을 잡아끄는 것은 이경호의 신작인풍경. 이 작품은 이경호의 최근의 대표작인 광주비엔날레의 달빛소나타와 연결선상에 있는 작품이다.달빛소나타에 대한 유진상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경호가 사용하는 비디오 영사기의 증감효과는 피드백 프로세스와는 또 다른 극적 무대를 만들어낸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한 달빛소나타에서 그는 달의 원형을 떠올리는 뻥튀기를 수없이 많이 만들었다. 자동으로 쌀이 공급되는 뻥튀기 기계가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여준 이 작품은 한 무더기로 쌓여진 뻥튀기를 관객이 먹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층적인 의미생산을 이루어내고 있다. 앞의 작업카오스와의 연속선상에서 읽히도록 만든 이 작품은 마치 기계가 달을 찍어내는 듯한 유비와 하면서 튀겨지는 파열음의 극적 효과, 그리고 그것을 먹는다는 행위가 연상시키는 종교적 함의-카톨릭의 영성체-혹은 에로티시즘-관객의 신체를 먹는 행위에 개입시킨다는 의미에서- 때문에 현장에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작가는 감시카메라를 쌀을 누르는 프레스에 근접시켜 촬영하고 이렇게 확대된 이미지를 비디오 영사기를 이용하여 다시 커다랗게 투영하여 드라마틱한 효과를 극대화했다. 비디오 장치의 현재성과 오래된 기계장치의 현재성을 경쟁시키는 이원성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사찰의 타종을 떠올리는 뻥튀기 기계의 반복적인 굉음이 현재에 대한 자각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로부터 튕겨 나오는 것은 역시 원형으로 수북하게 소진되어 쌓여가는 현재의 잔해들이다. 퍼포먼스가 강한 현재진행형이라면 그것의 조각적 표현은 현재를 사물의 형태로 끊임없이 찍어내고 관객이 직접 그것을 먹으며 소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호의 오래된 기억들중에서

 

여기에 이경호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님에게!!! 어렸을 적 달을 닮은 뻥튀기는 나에게 작가적 영감을 가장 많이 준 먹거리 과자였습니다. 역사가 삼사십년 된다고 하니 저와 나이가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모양 저런 형태를 입으로 먹고 자르면서 또는 손으로 잘라서 침으로 녹이며 달에다 대어보기도 하고선 여러 형태의 다양한 조각을 만들어 냈습니다. 달이 뜬 밤이면 어머니는 장독대가 있는 대안으로 올라가 정안수에 달을 띄워 놓고 군대 간 형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하셨습니다. 또 뻥 과자는 제가 어릴 때 성당 미사 시간에 나누워 주던 밀떡과도 닮았습니다. 다빈치의최후의 만찬을 생각하면서 받아먹었습니다. 그런데 곧 배가 고팠습니다. 미사 전 몇 시간은 공복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끔 밀떡이 뻥 과자로 보였습니다. 사라의 빵!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사랑으로서 서로를 대하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무척 어려운 일이죠, 저도 가끔 가슴을 칩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의 빵을 나누어드립니다. 전쟁의 폭탄소리가 아니라 평화의 뻥 소리 어릴 적 낭만과 꿈과 사랑을 뻥 소리와 함께 가져가십시오. 이라크로 파병하는 자이툰 부대가 포 쏘는 훈련대신 뻥 과자 튀기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신문 지면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무척 반가운 기사였죠. 실력 없고 정신 나간 타 구단 축구감독의 요청으로 가족들의 끼니 걱정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주전자 담당 용병 후보들의 모습들처럼 약간은 처량하기도 하면서 아름다웠습니다. 미디어가 뻥만 늘어놓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선택한 패션쇼에서 가끔 쓰이는 단조 음악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돌면서 뻥이 터질 땐 묘한 감정이 듭니다. 우리들 인생 같기도 하고 미래의 기계적인 인간복제의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면서, 처량하게 쌀이 고압에 연기를 내면서 터져 나오는 뻥들의 쌓인 형태는 널브러진 시체들의 무덤 같기도 하였습니다. 새삼 광주에 고개를 숙입니다. 이 작업은 프라다와 저의 공동 작업입니다. 이름 레벨이 없는 프라다의 가방은 저의 뻥 과자와 동급입니다. 프라다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무인도에 뻥 과자와 프라다 가방이 있다면 우리는 뻥 과자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문득 어릴 때 먹을 것을 가지고 누나와 싸운 기억이 납니다. 모든 전쟁도 결국엔 먹을 것 때문에 생깁니다. 서로 잘 적당히 나누어 먹고 살면 좋겠습니다. 내가 더 잘 먹으려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뻥 과자는 관자로 드셔도 되고 작품으로 보관 하셔도 됩니다.

p.s: 올 초 우연히 총신대 앞의 약속장소에서 이 뻥 기계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그냥 우연은 없나 봅니다. 첫 만남에 전기가 왔습니다. 우리의 매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예술은 진짜 발견하는 것일까요? 우연이 과연 우연일 뿐일까요?

200477일 이경호 드림

-광주비엔날레를 위한 이경호의 작가노트중에서

 

비평가 혹은 전문가들이 그의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과 실제 그가 그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극적으로 다르다. 바로 이 지점이 필자가 이경호를 아방가르드 로맨틱이라고 부르는 지점이다. 이경호의 시선은 그의 작가노트에서 보듯이 줄기차게 우리네 삶에 집중해 있으나, 그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다분히 실험적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용어 정리를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낭만주의라고 부르는 미술사조는 낭만적인 미술이라는 관습적인 해석으로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들라크루와의 그림이나 제리코의 그림을 단 한 점이라도 본 사람은 그 그림들이 관습적인 의미로 낭만적인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여기서 같은 그림을 놓고 로마주의 그림이라고 설명해보자.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미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아셨을 것이다. 낭만주의의 원래 명칭은 로마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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