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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영평론-최흥철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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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영-빛과 소통, 그리고 사람


최흥철(미술이론,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진시영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뉴폼(New Forms) 수학하고 귀국한 이후, 2006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를 통하여 인간의 존재를 미로 구조 속에 갇혀 움직이는 실험 동물에 비유한 4채널 비디오 <Human Maze>(2004)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도시의 감춰진 모습과 그 안의 일상적 휴머니티를 영상과 설치를 통해 표현한 작품<광주, 일상의 단편들>(2006)을 연달아 발표한다. 그리고 <Alley>(2006) 시리즈를 통해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다수의 다양한 장소특정적인 비디오 설치 작업들을 꾸준히 제작 발표하였다. 2008년을 전후로 전자 매체인 LED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빛의 점을 하나의 픽셀로 대비시키는 픽토그램(pictogram) 작업과 함께 그것의 스크린 지지대라는 기능적 구조를 넘어서는 미디어 구성품(component)로서의 유기적인 입체, 즉 조각적인 입체 스크린의 다양한 형태를 영상과 일대일로 결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해 광주시립미술관 인사동 분관인 빛 갤러리의 초대 전시에서 파도의 물결 형상으로 굴곡진 조각 <Wave>(2008)의 LED 스크린 위에 실제 바다 수평선과 일몰 영상을 3차원적으로 설치하여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는 본격적인 대형 LED 디스플레이 조형작품인 ‘Linking Spot’을 공공미술로 첫 선을 보였다. 이 즈음 그가 주목하기 시작한 바쁜 시민들의 역동적인 일상의 이미지를 픽토그램 방식을 적용하여 빛의 점(光点)으로 환원시켜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울리는 즐거운 군무, 도시인들의 발랄한 에너지의 발산, 무질서하게 엉킨 이미지의 충돌과 융합, 혼란이 사라지고 정돈된 모습들이 사회 속의 협동하고 어울리고 소통하는 역동적인 이미지 순서대로 애니메이션 영상 속에 담았다. 이러한 연구의 결실은 기하 추상적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래밍 된 빛 이미지를 출력하는 2009년 작 <Harmony>의 완전한 구(球) 형태의 스크린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통의 통합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주목은 <Sign>(2010) 시리즈를 통해 디지털에서 다시 아날로그 영역으로 역행하는 모습으로 일종의 모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시리즈의 작업은 일견 실제 인물들의 신체 움직임을 포착하여 디지털 코드화(coding)하는 짐 켐벨(Jim cambell, 1956~) 과 줄리앙 오피(Julian Opie, 1958~)의 광점 애니메이션의 유머러스한 버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자의 작가들이 실제 객체의 움직임을 입력하거나 주요 파트에 센서를 부착하여 인물의 동작에서 개인의 특징적인 캐릭터를 추출하여 움직임의 알고리즘을 역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라면, 진시영의 방식은 신체 움직임을 프로그래밍(또는 입력)하고 개인의 잘 짜인 움직임과 인간의 상호작용성을 추상적 소프트웨어로 하여 비트의 이동을 아날로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화 된 신체는 시각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상호교류, 다양성이 감소하지 않게끔 데이터 스페이스와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서 종합체를 유지해주는 장소(또는 지점)이다. <Sign> 시리즈는 사회적 기호로서의 인간이자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한 지점이며, 윌리엄 깁슨(William Ford Gibson, 1948~)의 사이버 펑크 소설 <뉴로멘서(Neuromancer)>(1982)에서 그랬듯이 네트워크 속에서 움직이는 미래적 존재로서의 정보 입자화 된 빛 사람의 본격적인 등장(또는 출력)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으로 인해 시공간과 시간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의 실험 영역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마르셀 뒤상, 만 레이, 라즐로 모흘리-나기 등)과 ‘다다’의 과감한 반예술 실험들은 비물질적 요소들과 움직임을 도입함으로써 ‘상호작용성’과 ‘가상성’이라는 시공간으로의 예술 확장을 이끌었다. 이러한 실험의 명맥은 백남준(1932~2006)과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1912~1992)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플럭서스(Fluxus)로 다시 이어지며 비디오 아트 탄생의 기폭제가 된다. 진시영의 근작 <flow>(2011) 시리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익숙한 역사적인 장면과 대면한다. 이 작품은 백남준과 찰스 아트라스, 현대 무용의 혁신적인 안무가인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1919~2009)이 WNET/Tirteen TV 연구소와 함께 제작, 발표한 사이텔릭한 네온 효과의 <머스 옆의 머스>(Merce by Merce)(1975)와 여러 모로 비견될 수 있다. 존 케이지를 포함한 전위적 작곡가들의 전자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는 안무가 머스 커닝행과 그의 무용수들의 다양한 동작들이, 다른 각도의 카메라 영상 장면들이 아날로그 비디오 믹서기로 동시에 합성되고 망막을 자극하는 사이키델릭 아우라 광선을 뿜어대는 초현실주의 풍의 비디오 작품이다. 이후 <새장 속의 케이지(Cage in a Cage)>(1990)나 <다다익선>(1988),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well)>(1984)등 백남준의 대표적인 위성 예술을 포함한 많은 비디오 조각들에서 자주 상영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진시영의 <Flow>는 무용과 음악,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동시 협업한 영상작품이라는 점에서 백남준과 그 동료들의 위대한 아날로그 비디오 협업(collective work)이 이룩한 전자합성 작품의 오마주(homage)로 읽힌다. 그러나 비계층적 통합(Integral)으로써 모더니즘의 진공성에 격렬하게 대항하는 반예술적 전위인 백남준에 비해서 진시영의 낙관적인 관점은 ‘드가(Edgar De Gas, 1834~1917)의 사진과 발레와 움직임의 관계’에 보다 가깝다. 배경으로 흐르는 쏜살같은 가야금 연주 가락에 맞춰 움직이는 한국 고전 무용의 물 흐르는 듯한 춤사위를 정교하게 포착하기 위하여 마커(marker)로 사용하고 있는 LED 인공광의 점(dot)들은 이미지의 수적 재현과 물리적 공간의 사이버네틱스를 위한 센서 역할을 하며, 픽셀(pixel)의 실루엣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사람들을 인터페이스 상의 그래픽 아이콘으로 만들고 있다. 무용수의 빠르게 움직이는 궤적들을 동시에 다각도로 포착하는 것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0-1904)의 동물 움직임 촬영법을 연상시킨다. 정보의 조각(bit)으로 이루어진 빛의 궤적은 암흑 공간 속에서 부드럽고 유연하게 휘어지고 전 방향으로 확산되어 간다. 반딧불이 몇 천 배 증폭된 듯한 차갑게 빛나는 전자 불꽃의 트랙들은 카메라의 물리적 움직임-수평적 이동(panning)과 진자(pendulum) 왕복운동, 주밍(zooming), 회전(rotation)-이 더해지며 상호작용적 사이버 스페이스 안에서 데이터의 불확정적이거나 혹은 유기적인 패턴 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백남준은 자신을 ‘정주 유목민(Stationary Nomad)’이라고 지칭하였다. 이것은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아이디어(정보)를 멀리 보낸다’는 의미로 고안한 그의 개념이다. 이것은 1974년 빛의 속도로 정보가 질주하는 ‘일렉트로닉 슈퍼 하이웨이(Electronic Super Highway)’의 아이디어로 다시 연결되었다. 한 점(장소)에서 또 다른 점(장소)까지, 정보화된 빛의 선(wired)으로 거미줄처럼 다중 연결되는 정보화 고속도로에 대한 탁월한 직관과 통찰은 오늘날 보다 다원적이고 복잡성을 띠는 소통을 위한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의 탄생을 예견한 것이다. 진시영이 신체와 결합된 미디어 공간 안에서의 움직임을 정보화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가시화하는 것은 예술과 문화, 그리고 삶 사이의 오랜 불가분성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인간의 유기체적인 신체(ecological body)는 미디어와 결합함으로써 공감각의 개별 분리를 통하여 감각이 몰입되고 거대하게 빛의 망으로 증폭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인간의 광학적 미디어 체험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자의 영역이 상호 반영되어서 감각 영역의 경계 확장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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