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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영서문-신민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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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휴머니티 >
– 뜨거운 미디어



 신 민 (진화랑 기획실장)

 

“모든 미디어는 인간이 지닌 재능의 심리적 또는 물리적 확장이다. 바퀴는 (···) 발의
확장이다. 책은 눈의 확장이다. (···) 옷은 피부의 확장이다. (···) 전자회로는, 중추신경계의
확장이다. 미디어는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내부에 있는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지각하게 한다. 그야말로 감각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 유형 –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 을 변화시킨다. 이런 부분이 변화함에 따라, 인간도 변화한다.”
(맥루언/피오르, 『미디어는 맛사지다』, P. 26-41)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로 영혼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잭슨폴록식 추상회화를 뜨거운 추상이라 부르고, 철저히 감정을 억제하고 순수 기하학적 조형 요소만으로 절제된 화면을 구사했던 몬드리안식 추상회화를 차가운 추상이라 부른다.
디지털 기술을 재료로 하는 미디어아트는 보통 그 과학적 성격 때문에 차가운 예술로 간주되곤 한다. 차가운 추상이 예술을 삶과 분리시켰듯이 디지털 아트의 차가운 이미지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느낌을 주곤 한다. 디지털환경이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아트가 가슴을 적시는 예술로서의 역할을 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진시영 작업의 의미 및 효과는 바로 이러한 난제를 넘어서는데에 있다. 그의 <Wave>작품 - 바다의 물결치는 형상의 조각에서 일몰과 일출 장면이 LED 조명으로 발광하는 작품- 이 그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출발은 작가 자신이 삶에서 치유를 얻었던 경험 – 바닷가의 일출, 일몰 풍경을 관조하는 순간- 을 다수에게 예술로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살아숨쉬는 자연의 감동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허상적 이미지로 인식되는 영상을 실체적 형체 속에 담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인공의 빛 중 가장 밝은 발광 효과장치인 LED로 실제 자연의 빛이 지닌 찬란함을 표현해 내고자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나전칠기와 자개, LED 조명, 인간, 춤이라는 요소가 융합되어 이루는 스토리텔링이다. <Flow>시리즈는 한국 무용수의 몸에 LED 조명 칩을 달아서 그의 춤 동작에 의해 생겨나는 빛의 흐름으로 무한 반복적인 영상이 재생되는 작업이다. 여러 색채로 바뀌는 조명이 움직임에 따라 겹쳐지고 흩어지면서 화면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다채로운 선형의 그림으로 채워진다. 점과 선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추상적 이미지,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며 스케치하듯 그려지는 그림은 마치 회화적인 그림을 접하는 것과 같다. 화면 외부에는 자개로 수놓아진 나전칠기로 프레임이 디자인 되어있다. 꽃 형상의 자개장식 나전칠기 조각이 모니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형식의 작품도 있다. 영상이 꺼진 후 그 실체가 사라져버렸을 때 예술로서의 의미가 공중 분해되어 버리는 점에 대한 대안으로 영상이 꺼진 후에도 예술로서의 존재의미를 지니도록 고안한 것이다.
진시영의 작업은 인간이나 자연이 살아움직이는 순간에 생성되는 에너지의 흐름을 가시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공기 속에 흐르는 에너지는 물리적으로 결코 잡을 수 없고 볼 수 없다. 작가는 비물질적 흐름의 속도와 잔상을 무한히 이어지는 빛으로 발현시킴으로써 결코 잡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 흘러가 버리는 순간을 무한히 붙잡아 두고 싶은 불멸성, 영원성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흐르는 듯한 상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나전칠기가 전통이라는 과거를 디지털은 미래적 이미지라는 점에서도 과거와 미래의 흐름이 전해진다.
흐름을 붙잡아 두려는 의지는 회화작업으로 확장된다. 영상의 내용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선택하여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낸 Flow 시리즈의 평면작업들이 그것이다. 마치 영상 캡쳐 사진같이 보이지만 직접 그려지는 동안 부분부분 빛의 묘사가 강조되어 있어 더욱 입체적이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임의적으로 강조한 선과 색은 무용수의 즉흥적 동작으로 만들어지는 화면의 우연적 성격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인 면에서 모두 디지털 공간과 아날로그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표현은 디지털 기술로 인간의 정서를 만족시키는 완전한 디지로그의 구현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디지털 기술이 붓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인간의 온도를 나타내는 요소가 작업 전반에 깔려있는 점, 우연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진시영의 작업은 휴머니티를 전제로 하는 뜨거운 미디어 아트로 범주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의 위대함은 작품 속에 미래적인 기술과 과거의 서정적 모습들을 교차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과 자유로움, 그리고 일상생활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는 데에 있다. 진시영의 미디어 아트 역시 단지 미래적 장치의 기교를 넘어서는 뜨거움과 서정성이 담긴 의미 있는 진술로서의 예술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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