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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와 나르시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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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Document콤플렉스와 나르시즘 사이

백기영(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 부장)

권승찬의 2014년 미디어작업 <완성은 허무하고 높은 것은 불안하다>는 광주시립미술관이 운영하고 있는 북경창작센터에 설치되었다. 바닥에는 북경에 체류하면서 사용했던 생활 쓰레기들을 분쇄하여 무게를 달아 내장한 인골함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의자, 빨래건조대, 사다리, 선풍기, 탁상용 전등들이 쌓여 만들어진 구조물이 서 있었다. 공간 전체에는 사이사이로 설치된 LED램프들이 공간을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 설치작업은 하염없이 위로 위태롭게 자라났고 여전히 설치 중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사물들은 좌불안석(坐不安席)하여 초조와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무너질 것처럼 위태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들은 ‘어떤 것(Something)’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도달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들은 일견 허무해 보이고, 불안해 보였다. 이 설치작업은 작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은유이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은유로 읽힌다.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15여 년 전에 보았던 파울 이젠나트(Paul Isenat)의 비디오 설치작업을 떠올렸다. 그의 작업은 가로로 길게 늘어진 갤러리 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오른쪽에는 ‘어떤 것(etwas)’라는 네온 글자가 독일어로 써 있었고 왼쪽 끝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두 개의 글자들 사이에는 비디오 모니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 넓은 공간을 감당하기에 턱 없이 보잘 것 없고 허무해 보이는 모니터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라인 강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라인강 물결의 출렁거리는 파동을 응시하고 있으면 강물의 파동은 서서히 텅 빈 공간을 밀어내며 물결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강물은 ‘어떤 것’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강물을 향해 걸어 나오는 작가의 모습이 비디오 화면에 떠올랐다. 그의 손에는 몽둥이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는 몽둥이를 들어서 있는 힘을 다해 흐르는 강물을 “철썩!” 후려쳤다. 강물은 방망이의 가격으로 일순간 갈라졌다가 파동 치면서 다시 흐름 속으로 사라졌다. 빈 공간을 강물의 흐름으로 가득 채웠던 우리의 잔상은 순간 물결의 파동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 나갔다.

파울 이젠나트는 이 작업을 통해서 ‘어떤 것’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로 흘러가는 인간의 삶을 은유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삶은 망각 속으로 빠져든다. 그 망각의 강에서 예술가의 행위는 그저 작은 파동을 만들어 내는 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의미를 가지는 ‘어떤 것(etwas)’과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nichts)’들이 공존하고 있다. ‘어떤 것’들은 그 가치를 존중받아 중요한 공간에 보관되거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기념한다. 권승찬이 설치에 사용한 일상적인 사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존재를 확인 받을 길 없이 무위적으로 존재하다가 우주의 순환원리를 따라 소멸되고 없어진다. 권승찬은 자신의 이름 앞에 ‘대충(大總)’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복잡한 세상 ‘대충’ ‘대충’ 살자는 의미일까? 지나치게 진지한 ‘어떤 것’들의 가치로만 똘똘 뭉친 예술계에 대한 조롱의 의미일까? 국어사전에서 ‘대충’은 ‘대강추리는 정도’, 어떤 일을 할 때, ‘어림으로 적당히 헤아려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아는 목수가 언젠가 내게 말했다. ‘자세히 하지 않고 기본적인 정도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대강(大綱)’은 본래 한옥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대강하라는 말’은 ‘대강을 철저하게 하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강은 집의 뼈대를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고 이것을 바로 세우는 것을 소홀히 하고 나머지에 공을 쏟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수는 대강을 세우는데 공을 들이 돼 사사로운 것들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의미없이 사용했던 ‘대강’ 혹은 ‘대충’은 아무렇게나 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꼭 필요한 것을 철저히 하면 나머지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작가 권승찬은 늘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권승찬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하면서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다가 <안녕하십니까? 권승찬입니다. (1999)>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생업을 위해서 시작한 명함디자인 회사 일을 작업으로 연결시킨 것인데, 명함을 무작위로 여러 미술계 인사들에게 발송하는 작업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온 우편물들이 작가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이런 행위가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용기를 냈던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무모한 행위들이 대학을 갗 졸업한 권승찬을 광주지역에서 다시 살펴보게 했다. 이 시기 이후에 진행된<18(X팔)(2003)>이나 홀로 자취생활 경험에서 나온 <자취집 시리즈(2003)>, <모여라 꿈동산(2006)>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상황을 거침없이 작업으로 표현한 시기에 해당한다. 자취생활을 통해서 경험한 설거지가 탑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신학철의 <한국근현대사>를 떠올리다니? 그는 이 시리즈를 패러디해서 <자취의 현대사>를 제작했다. 이런 식의 거침없는 패러디 작업은 자기세계에 도취한 나르시즘의 절정을 이룬다. 이런 나르시스트적인 작업들은 대규모 스케일의 설치작업일 경우가 많았는데, 다루는 내용들은 엄마와의 일상적인 대화이거나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언어는 액션이다(2010)>는 작가 본인의 어릴 적부터의 난독증을 다루었다.

작가가 중국에서 체류할 당시 그렸던 <남자 시리즈(2010)>역시도 자신의 콤플렉스를 반영한 작업인데, 권승찬은 개인의 콤플렉스(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학력, 언어 구사능력)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오히려 자신의 콤플렉스를 주제로 작업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권승찬의 작업이 외형적으로는 조형미를 갖추고 있지만, 작업을 구성하고 있는 네러티브를 살펴보면 자신의 콤플렉스로 구성된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수직으로 쌓아 올린 주방용품의 곡선 라인은 자신의 게으름(밀린 설거지), 프라이팬으로 날아드는 낱말들의 나열은 자신의 난독증을 의미한다. 또 <남자시리즈>에 등장하는 남자의 보잘 것 없는 일상은 파스텔 톤의 추상표현주의 화면에 갇혀서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도록 그려져 있다. 이 남자들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음탕한 짓을 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을 보아야만 그림 속의 남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니 이 시리즈의 그림은 정말로 소극적이다. 이 소극성 안에는 자신의 콤플렉스, 사회적 금기나 사회적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자아가 숨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콤플렉스들이 모여서 추상적인 화면을 구성하게 되면서 이 그림들은 소기의 조형적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콤플렉스가 나르시즘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이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소심한 시도에서 시작한 일들은 오히려 효율적인 소통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2007년 의재창작스튜디오에서 시작했던 소 출력 라디오방송국 퍼포먼스<바셀린프로젝트>는 지역의 중고생들과 함께 재미삼아 시작한 것인데, 서울, 광주, 안양 등 전국 14개 지역에서 방송국 프로젝트를 확대해서 운영하기도 하였고 2009년에는 대인시장에서 <OK공공프로젝트>를 통해서 식당, 도장, 디자인 사무실 등을 운영하면서 예술가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젝트는 예술로 받아들이기엔 지나친 농담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프로젝트들은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나 시장 상인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친화력을 강화시켜 주었다.

최근 주력해서 작업하고 있는 권승찬의 멀티미디어 작업들을 보면,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네온등이나 LED 등을 활용한 설치작업들은 이른바 ‘미디어 아트’로 대변되는 예술형식에 대해서 발언한다. 광주미디어 아트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나는 미디어 작가가 아니다.”라는 텍스트와 함께 전형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보이는(?) 작품을 설치했다. 광주광역시는 아시아문화의 전당 이외에도 일조량이 가장 많은 도시 “빛 고을”을 브랜드화 한, LED와 광섬유 산업을 육성하는 도시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데, 이에 준하는 미디어 아트페스티벌이 지역 내에 끝없이 만들어지고 또 상투적인 미디어 아트가 판치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미디어 작가가 아니다(2015)”고 외치는 권승찬의 작업은 이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에 단골로 초대되고 있다. 또 다른 그의 설치작업 “나는 창의력이 싫어요!(2015)”라고 외치는 예술가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들은 권승찬 특유의 아무것도 아닌 척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이처럼 권승찬의 작업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어떤 것’을 향해 자라나고 컴플렉스의 강을 건너 나르시스트의 환영이 비추는 개울가에 도달한다. 이 둘은 정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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