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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문_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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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화/가시화된 공간과 조형형식의 역동성

 

 

한진 미술사학 박사/달뫼미술관 큐레이터

 

 

김진화의 설치작품 도시 연작 <Invisible Cities> 은 뉴욕유학을 하면서부터 천착해 온 공간에 대한 치열한 조형적 탐구의 선상에 있고 그 보이지 않는 공간을 다양하게 시각화하는 주제내용으로는 역시 불가시의 세계인 작가내면의 모습을 시각화 한다. 결국 눈으로 볼 수 없는 두 가지의 대상, 물리적 공간과 심리내면의 공간에 대한 다양한 조형상의 공략이 김진화의 최근 작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음악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장르라면 미술은 애초 눈에 보이는 형상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일진대 텅 빈 공간에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김진화의 작업은 전통적인 미술의 관점에서 퍽이나 벗어나 있는 셈이다.   

 

상충하는 형식미의 역동성

 

<보이지 않는 도시, Invisible Cities> 연작에서 김진화는 공간의 반대개념이랄 수 있는 이차원의 평면을 삼차원공간의 표현을 위해 과감하고도 정확하게 이용하였으며 이번 설치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하다. 채집하여 조합한 이미지를 두 장의 아크릴판 사이에 넣고 고정시킨 후 그 직사각형의 아크릴판들을 전시공간에 일렬로 배열하여 매달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일점투시법이 캔버스와 같은 평면상에서 원근의 착시효과를 이루었다면 이와는 반대로 김진화의 설치작품에서 일렬로 배열된 아크릴판은 중첩된 평면이 되어 실제 공간의 물리적 존재 또는 깊이를 지시한다. 일점투시법에서 평면이 공간을 대변하고 대리하고 위장하면서 회화의 우월성을 담보하였다면 김진화의 설치작품에서 평면과 공간은 서로 밀고 당기는 대립의 관계를 유지한다. 달리 말하면 수학에서 미/적분을 하듯 불가시의 공간을 여러 조각의 평면으로 잘라내고 그 자른 조각을 다시 배열하여 삼차원 공간을 가시의 세계로 치환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아크릴판이--회화처럼--벽에 걸린다면 역동적인 평면과 공간의 대립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단조로운 평면의 무한독재만이 계속 될 것이다. 

김진화가 이전에 발표한 설치작품을 보면 입체이거나 무정형의 형태를 지니는 오브제가 많았다. 예로 종이를 지지물이 없이 매달거나 바닥에 설치하면 자연스럽게 구겨져서 특정한 형태는 없지만 그 자체로 이미 부분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시인의 숲 (2002)이나 절대자의 숨바꼭질 (2005)에서 잘 나타나는데 종이라는 평면이 공간의 힘에 이미 포섭되어 버린듯하여--늘어선 평면의 아크릴판이 공간의 존재를 지시함과 동시에 그 공간의 급조된 권력에 대립하면서 야기되는 팽팽한 긴장감 보다는--조화로운 아늑함이 우세하였다.     

상충되고 상반되는 조형요소의 대립적인 병치는 도시연작의 작품세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Dream of Cities>는 원형 안에 핏줄을 연상하게 하는 나뭇가지에 여러 가지 이미지를 부착하였고 바로 옆에 설치한 <Cities and Desire>는  사각형 창살과 같은 구조에 형상을 콜라주 하였다. 유기적인 구성과 기하학적인 구성을 대립병치 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Cities and Signs>의 기하학적인 창살구조와 <The Silence of Cities>의 표현성이 강렬한 나뭇잎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나란히 설치하였다. 

 

가시화된 내면의 풍경     

  상충되고 대립되는 형식요소를 병치하여 역동적인 미적구조를 유지하는 조형사고는 시각적으로 볼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의미내용으로 그리고자하는 작가의 의도와 맞닿아있다. 뿐만 아니라 채집, 변형, 조합된 이미지는 공간에 둥실 떠있는 동시에 두 장의 투명한 아크릴판에 갇혀있는 데 이러한 작품의 구성 또한 구속과 자유의 이중의 의미구조를 내포한다. 김진화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물질적인 세계와 비물적인 세계,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현실과 비현실적인 세계, 육체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 이러한 영역들을 한 마디로 볼 수 있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평면과 공간을 그 역동적 차이를 용인하며 아우르듯 작가는 비미술의 영역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물론 국내외를 막론하고 형상을 통하여 심리내면을 그린 작가는 많다. 초현실주의 미술작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막스 에른스트는 김진화처럼 콜라주 기법으로 심리적인 환상을 표현하였다. 그렇지만 그 차이는 확연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사회적, 성적, 심리적인 억압이나 상처의 병적 증상으로 파악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경도되었던 그들에게 억압되고 상처받은 심리내면은 치유할 수 없는 병이되어 돌아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내면세계는 결코 아름다운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김진화에게 비가시적인 심리내면은 마음껏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동경의 세계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때는 내게 세계는 넓고 넓은 그 무엇이었다. 보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너무나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보고 싶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병든 심리상태를 표현했다면 김진화는 자본주의 물질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과 상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그린다. 

도시연작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초현실주의풍의 음산한 이미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열쇠구멍형상의 구성, 꼭두각시처럼 조종되는 인물들은 도시의 단절감이나 현대인의 이기심을 의미하는 모티프이다. 김진화의 보이지 않는 세계 또는 도시는 실제의 세상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를 읽는 과정이 단조롭지가 않다. 다만 그가 비판적으로 보는 상황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처럼 어떠한 출구도 존재하지 않는 절망이 아니라 개선되고 치유될 수 있는 대상이다: “상처를 꿰매듯 그 위에 실로 재봉한다.”

김진화가 뉴욕유학이후부터 제작하고 발표한 작품들은 다양한 형식을 보여주었고 그 주제내용 또한 깊이와 다양성을 유지했다.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만큼 작가는 독서에서 자주 작품의 영감을 얻고 깊은 사색을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김진화의 내면세계, 그 사색의 도시에는 지금쯤 어떠한 모습의 신작이 숨쉬며 성장하고 있을지 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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