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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정-전시서문(김진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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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화,  비상(飛上)을 꿈꾸다

 

                                   황 유 정(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1. 전시를 개최하며

나무를 밑에서 올려다 볼 때, 사람들은 누구나 넉넉한 나무의 품새를 닮고 싶어 한다. 든든한 팔과 같은 가지에 잎을 돋게 하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또 달콤한 열매를 매달고 있다. 그 품은 한없이 따뜻해서 걱정을 부려 놓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조금 더 나무를 따라 끝없이 올라가다 보면 나무의 꼭대기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새는 둥지를 틀어놓고, 자신의 발바닥만 겨우 올려놓을 수 있는 정점에 앉아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또 다른 비상을 꿈꾸고 있다. 땅에서 올려다보기만 해서는 어림없는 풍경이다. 나무와 함께, 나무처럼 비상해야만 엿보기가 가능하다. 마음의 비상(飛上)이 가능한 사람은 천상의 세계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마음의 비상이 가능한 작가가 있다. 김진화는 열린 창공을 향해 촉수를 뻗어보는 호기심 많은 작가이다. 평소 책을 통한 철학적 사유와 글쓰기를 즐겨하는 김진화에게 누적된 시간은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일반인들은 김진화를 작품에 빛을 적극 활용하는 작가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작업의 출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의 공간을 가시화시키고자 입체와 평면, 설치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내면의 갈망을 창의적으로 분출시켜온 감탄할 작가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처럼 역동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진화를 올해의 청년작가로 선정․초대하여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작업이 재도약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2. 김진화의 작품세계 

김진화의 작품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신비스런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LED조명으로 수놓은 별빛과 여신, 천사, 그리고 기호처럼 나열되는 사물들... .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조합이지만 호기심으로 빠져들면서 왠지 모를 행복함이 차오르게 된다. 깊은 사색과 자로 잰 듯한 엄격함이 느껴져 매우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푸른 하늘 한 조각에도 꿈을 매달 수 있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진화는 많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심리,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판, 인간의 잠재 욕구 등을 화두로 삼았다. 그러나 항상 작품의 내면에 흐르는 것은 ‘인간의 순수 영혼을 일깨우기’였고, 평면과 입체, 설치작업의 상호조응과 공간 탐구를 바탕으로 작품 형식의 변이를 추구해 왔다. 이번 전시는 2015년 신작을 중심으로, 초창기 회화작품을 비롯 드로잉, 설치, 평면작품, 입체작품, LED 작품 등 각 시기마다 개인전을 통해 보여주었던 중요작품을 전시함으로써 김진화의 작품세계를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직후 열린 제1회 개인전(1994)에서 보여 준 작품들은 다분히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예고했다. 김진화의 말을 빌리자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항상 조각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전시 중인 작품 <한여름 밤의 꿈>(1994)을 보면, 종이를 바탕으로 물감을 칠하고 긁어내고, 덧칠하기를 반복함으로써 결과 된 형상이 중첩된 레이어의 느낌을 일게 한다. ‘평면작업을 어떻게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욕구의 전조가 읽혀진다. 또한 표리부동하고 물질과 권력이 팽배한 세상사가 불편한 김진화는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보다 더 무궁한 내면의 세계로 몰입을 추구했다. 당시 작품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나무와 인간, 창공을 향한 통로, 그리고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등은 순수 영혼을 향한 자기 내면의 대입체이자 고양된 정신세계를 바라는 표현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현재의 입체 레이어 작업으로 이끈 방향키가 되었다. 

 

자연의 유기적 변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최고의 대상이었다. 김진화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다양한 설치작업들에 적극적이었다. “Into Drawing"(2002) 전에서는 책에서 오려낸 글귀들을 실에 매달아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뒤 드로잉 작품을 함께 설치함으로써 평면과 입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드로잉의 경우 시적 언어가 오브제와 결합되기도 하는데, 김진화에게 드로잉은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언어였다. 주의 깊게 보면, 드로잉 작품은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삶의 흔적을 추상화 시킨 드로잉 작품 <흔적>(2007)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마구 뭉개져 있는 드로잉, 날개 달린 인간의 추락, 반복되어지는 네모의 창문 등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하고 있는 작가의 무의식의 반영이다. 작품 <Coming out>(2004)은 생명력으로 변화해가는 자연현상을 시각화시킨 설치작품이다. 부드러운 부피감의 오브제를 만들고 길이가 다른 실을 매달아 각기 다른 개인의 ‘자아(自我)’를 표현했는데, 기대처럼 오브제는 전시 공간과 결합함으로써 다양한 공간을 연출했다. 오브제에 비춰진 조명은 그림자를 만들고 그 그림자는 또 다른 공간 형성으로 이어짐에 따라 유기적 공간처럼 느끼게 한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이번 전시 공간에 맞추어 축소된 규모로 설치되어 있다. 이처럼 설치작업이 다채롭게 이어진 2000년대 중반까지는 평면(2차원)과 입체(3차원)의 상호작용과 공간에 대한 탐구기간이었으며 평면작품에서도 박스 안에 드로잉이 꼴라쥬나 오브제와 결합한 작품으로 나타나는 등, 새로운 작품 전개를 기대하게 했다.

 

2006년의 개인전에 설치된 작품 <Invisible Cities>는 도시 이미지를 8개의 영역으로 형상화한 연작으로, 김진화 작업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비가시적 공간의 가시화를 위해 평면상에 시각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로 드로잉 함으로써 관객을 내면세계로 유도했던 것과는 달리 규칙적 간격으로 평면을 여러 장(6~8장) 겹쳐 설치함으로써 중첩된 이미지가 실지 입체 공간을 만들도록 하였다. 평면과 입체의 상호작용을 위한 또 한 번의 실험인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금까지 설치에 사용했던 실이나 종이 대신 평면의 지지대로 아크릴판을 사용한 점이다. 관객들은 아크릴판 설치물 사이로 통행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시점이 정면으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방향에서 볼 수 있는 다시점을 획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8개 연작 중 4개의 시리즈를 구성해서 전시하고 있다. 작품 <Cities and Desires>에서 보여 지는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나 <Cities and Eyes>의 거미줄처럼 엮인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세상에 포획된 고전 글귀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향한 비판을 가하는데, 서정적으로 치환시키는 은유가 뛰어나다.

 

2007년 이후, 김진화는 레이어 작품의 편리한 보관과 작업의 용이함을 위해 종이 대신 포맥스라는 견고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체의 단단한 물성이 주는 완고함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일면을 함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레이어 층은 뒤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조도를 보안하기 위해 LED 조명의 매입을 착안했다. 한편 포맥스로 만든 겹겹의 층은 LED 조명의 밝기 조절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의 연출이 가능해서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A Room of One's Own(자기만의 방)”(2008) 개인전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잠재의식을 건드려 보여준 전시였다. 편집증으로 인한 현대인의 불신에 관한 대형 레이어 작품인 <켄타우루스(Centaurus)의 전쟁>이나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바탕으로 한 <거울의 방>, 콤플렉스를 배경으로 한 <가면 속의 여인>, <과대망상> 등 현대인의 잠재된 심리현상을 들춰내었다. 열쇠구멍을 통해 보여 지는 <자기만의 방>은 각자의 내면세계를 응시하게 하는 작품으로, 집착, 의기소침, 아집, 쉼에 대한 갈망 등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별자리와 매치된 여러 사물들을 나열함으로써 치유의 과정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유도했다. 여기서 소재로 선택한 신화의 주인공이나 별자리, 신전과 같은 건축물 등은 계속해서 다른 작품에도 반복되고 있다. 김진화가 사람들의 세상사를 이야기할 때, 이처럼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는 것은 알레고리적 요소가 많아 훨씬 풍부하게 내면 심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 일상에 갇혀버린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정방향의 패턴이나 규칙적인 계단 또한 심연의 공간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2010년, 북경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북경에 거주했던 시기는 내면에 집중하면서 작업 방향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번에 전시중인 작품 <어느 날, 화장실에서..>(2010), <처녀자리에 대한 감정이입>(2010) 등은 오브제가 결합된 원형작품으로, 그 시기 작업의 일부이다. 원의 형상은 안정과 휴식을 느끼게 하고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완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내밀한 자신만의 공간으로도 연결되어진다. 김진화는 내면에 집중할수록 자신의 존재를 발견해가고, 진실한 자아를 만나면서 행복으로 충만해갔다. 

 

김진화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개인전 “Something What We Need”(2011)에서 보여준 작품에는 별을 모으던 소유욕 가득한 여인이 꽃을 쏟아 붓는 은혜로운 여인으로 바뀌어졌고, 출구가 막혀버린 미로(迷路)대신 별이 수놓아진 아름다운 창공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이 열리고 있다. 자기연민으로 왜소해진 현대인들을 냉정한 비판의 눈으로만 가두지 않고 영원의 하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천공을 그리고, 아름다운 별이 반짝이게 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면 희망이 다시 깃들 수 있도록.... . 부드러워진 LED 조명이 만든 환영의 공간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담긴 부정적 자아보다는 긍정적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상승본능을 자극한다. 김진화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내면의 힘을 일깨우고 충만함을 주기 위해 더욱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천사>(2013), <천사가 되어...>(2013) 등 날개 달린 천사를 이미지화 한 작품이 자주 등장하고, “나무의 미학”(2014) 개인전에는 창공으로 뻗어 나가는 나무를 중심으로 ‘천국의 새’ ‘날개 꽃’ ‘별 나무’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체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김진화가 바라는 천상의 꿈은 인간 내면의 치유와 살아 숨 쉬는 영혼의 회복을 위한 기도이다. 

 

올해의 신작 <밤으로의 여행>은 어두운 밤 공간의 유리창을 통해 보여 지는 실루엣에서 착안한 설치작품으로, 공간 속에서 명멸하는 풍경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각의 한지 프레임 뒷면에 포맥스로 만든 형상들과 LED 조명이 감춰져 있고, 시간차를 두고 불빛이 깜박이는 11개의 패널은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빛의 효과를 절묘하게 살린 작품이다. 밤은 우리가 잠든 사이 많은 신기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시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심연을 향한 사색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김진화는 사람들이 매혹적인 밤의 창을 통해 순수한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작가가 펼쳐 놓은 밤 풍경을 응시하다 보면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뻗어 나가는 자신의 비상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3. 맺음말

건조해진 타인들에게 행복한 쉼을 주고자 쉬지 않고 달려온 창작의 길이지만 김진화에게 작업은 자신과의 대화의 길이기도 했다. 평면과 입체, 설치를 넘나들며 공간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시키고 빛을 끌어들이며, 어떻게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더 유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예술의 길로 들어선 이후, 산고를 겪고 탄생한 작품은 김진화의 청년기의 고민과 철학, 감성과 취향, 깨달음과 도전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항상 생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내면의 나를 귀한 존재로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때 무지(無知)가 끝나고,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진실한 자아(自我)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어려운 철학보다도 관객이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감과 소통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진화의 ‘꿈꾸는 창’전을 통해 각자에게 감춰진 내면의 힘을 고양시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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