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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아날로그_굿모닝디지털_류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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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

류병학(미술평론가)

이이남 왈, “전시 타이틀에 굿바이대신 굿나잇을 고심 끝에 붙였습니다. 아침이 밝으면 일어나듯 다시 위력을 떨칠 여지를 두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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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 굿나잇 아날로그 아트, 굿모닝 디지털 아트? 굿바이 아날로그 아트, 비기닝 디지털 아트? 그렇다면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이 아날로그 아트의 종말과 함께 디지털 아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굿바이 아날로그 아트, 비기닝 디지털 아트라고 표기하지 않고 왜 이이남은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이라고 명명했을까? 그렇다! 아날로그 아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날로그 아트는 미술시장에서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고가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아트는 마치 피크 오일 생산처럼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피크 오일 생산은 아날로그 아트를 제작하는데 사용되는 원자재들의 양적 감소를 뜻한다기보다 차라리 질적 측면에서 새로운 작품의 생산 감소를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날로그 아트는 어느 시기보다도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움을 표방한 아날로그 아트 측면에서 보자면, 아날로그 아트는 서서히 감소하는 반면, 디지털 아트는 차츰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은 저물어가고 있는 아날로그 아트와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아트의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이남은 전시 타이틀에 굿바이대신 굿나잇이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 아침이 밝으면 일어나듯 (아날로그 아트가) 다시 위력을 떨칠 여지를 두고자 했다고 답변했다. 이이남의 고심을 읽을 수 있는 발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필자 역시 아날로그 아트가 다시 위력을 떨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을 저물어가고 있는 아날로그 아트와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아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왜 아날로그 아트가 저물어가고, 디지털 아트가 부상하는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굿나잇 아날로그 아트, 굿모닝 디지털 아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언급한다는 것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장구한 아날로그 환경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되는 오늘날의 복합적인 상황과 얽혀 벌어지고 있는 동시대적 경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난 200121228일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오픈한 이이남 개인전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을 통해 윤곽을 그려보도록 하겠다.

 

이이남의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 개인전은 크게 4개의 파트로 구분될 수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11전시실과 3전시실에 전시된 광주를 테마로 제작된 작품들, 12전시실에 설치된 뒤샹과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 작품들, 24전시실의 명화를 재매개한 작품들, 25전시실의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을 사용한 디지털 퍼니처(Digital Furniture) 작품들이 그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지면에서 이이남의 명화 재매개를 가능케 한 사항들, 즉 이이남의 정체성(작가 의식)과 명화의 재매개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새로운 미술관/갤러리로 태동하고 있는 디지털 퍼니처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둘 사항이 있다. 필자는 이 지면에서 이이남의 트레이드마크로 불리는 명화 재매개작품에 대해서 이미 다른 지면을 통해 언급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이남의 명화 재해석을 지난 2011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개최된 이이남 개인전 <<명화가 살아있다>> 도록에 실린 텍스트의 부분을 발췌하여 이 지면에 인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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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의 <<굿나잇 아날로그, 굿모닝 디지털>> 개인전이 열리는 곳은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이다. 상록전시관은 숲과 산책로 그리고 새소리가 들리는 도심 속의 상록근린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상록전시관은 중외공원 내에 위치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거대한 시립미술관 본관과 달리 일종의 주택을 개조한 전시관이란 점에서 아담하게 느껴진다. 머시라? 전시관 이야기보다 작품 이야기를 해달라고요? 외람되지만 이이남의 작품 이야기를 하기위해서라도 전시관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상록전시관 입구를 들어서면 탁 트인 로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로비 천장을 올려다보면 세로의 검정 돌판에 한자로 서기 1981826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건물 상량식을 한 날짜다. 그렇다! 그 건물은 군부독재시절 세금으로 건축된 것이다. 그 건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할 때 숙소로 쓰려고 했던 일명 지방 청와대로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지방 청와대는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자 광주시민들의 반발로 인해 용도를 바꾸게 되었다.

 

2002년 전남도는 그 건물을 매입하여 아파트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아파트 건축은 사업성도 낮고 지역 환경단체들의 반발까지 더해져 포기한 바 있다. 2004년 광주시가 그 건물을 매입했다. 물론 광주시 역시 그 건물의 용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때 도립국악단 연습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어 광주지역 공연예술계는 광주에 미술관련 시설은 많으니 공연관련 공간으로 내달라고 요구했단다. 그러나 광주시는 그 지방 청와대를 시립미술관의 다목적 전시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결정하여 지난 2008년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으로 문을 열었다.

 

상록전시관은 18128의 부지에, 전체 건축면적 1861규모로 지하1, 지상2층의 본관동과 부속동으로 이뤄졌다. 지방 청와대의 모습을 보전하면서 내부는 현대적 감각으로 리모델링했다. 본관동 지상1, 2층에는 각각 옛 건물 당시 중앙홀과 방으로 쓰였던 공간을 개조해 6개의 전시실로 꾸몄다. 2층 야외 공간은 데크로 조성되어 상황에 따라 야외전시실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이남 왈, “상록미술관은 옛 전두환 관저로 불러졌던 곳입니다. 적어도 광주작가라면 그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여타의 화이트 큐브(중성적 전시장)에서 전시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관객이 상록미술관 입구를 들어서면 로비 가운데 설치된 수직의 거대한 작품을 만난다. 서울·부산·인천 등 전국에서 모은 15대의 낡은 텔레비전이 건물 상량식 날자가 새겨진 곳을 향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져 있다. 흥미롭게도 15대의 낡은 텔레비전은 한결같이 15개의 가구 안에 놓여있다. 대한민국 최초 국산 TV1966년 금성사에서 생산한 흑백TV이다. 당시 TV는 마치 안방의 귀한 물건처럼 가구 안에 설치되었다. 따라서 당신이 TV를 보고자 한다면, 가구의 문을 열고 일명 요술 상자로 불렸던 TV를 켜야만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시 TV는 컬러 세상을 흑백으로 보여주었다.

 

상록미술관 로비 센터에 설치된 15대의 TV 중 맨 아래의 TV가 켜지면 광주 금남로의 옛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분수대가 등장한다. 그 분수대를 중심으로 차들이 달린다. 적어도 광주시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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