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Home > 아티스트 > 아티스트

의재창작스튜디오 인터뷰, 2007

본문

의재창작스튜디오, 2007

인터뷰어: 유승덕(Yoo Seungdeog)

유 승덕: 권승찬씨의 작업을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군복 문양의 작품 시리즈나 ‘자취의 현대사’ 같은 작품들, 그 중에서도 ‘자취의 현대사’는 10 여년 이상 지속된 자취생활이 그대로 작품화 되어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자신의 삶과 작업 간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권 승찬: 제 개인적으로 작업이 일기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또 너무 직설적으로 개인적인 삶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게 아니냐는 주위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 점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고 갈등했던 것 같습니다. 예술하고 삶이 별개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저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얘기는 콤플렉스에서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 성격에 대한 콤플렉스, 가정환경에 대한 콤플렉스……. 이런 것이 작업 안에 본격적으로 스며든 것은 대학 졸업 이후의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 승덕: 소설가도 허구의 얘기를 만들어 쓴다지만 결국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 같습니다. 결과물로 나타나는 양태는 작가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요. 그럼 지금까지 했던 작업을 유형별로 분류해서 이야기를 진행해 봅시다. 처음에 언급할 것은 명함작업인데 이 작업은 현재 개인 작업과 병행하는 생계형(?) 디자인 일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데, 어떠세요?

권 승찬: 이것 같은 경우는 제가 졸업 후에 학습지 판매를 하다가 그만두고 시작했던 작업입니다. 미대를 졸업한 후에 여러 면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내가 왜 작업을 하려고 할까’ 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미술 역시 결국은 나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알리는 명함을 제작하여 전국에 발송을 하게 되었구요. ‘안녕하세요? 권승찬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요. 명함이라는 것은 타인과 최소한의 자기소개와 소통을 가능하게끔 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명함이 주는 이러한 상징성은 제 꿈과도 닮아있는 것 같구요. 누구하고도 소통을 하고 싶다는 꿈 말이죠.

유 승덕: 예술가들의 작업과 행위가 궁극적으로 봤을 때 타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면, 그것을 아주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명함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드네요. 그러면 그 다음에 군대 생활에 대한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군대생활 이라는 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일정기간동안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생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그걸 또 다시 작업으로 끌어낸 계기가 무엇입니까?

권 승찬: 2003년에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시의 주요테마가 거의 제 일상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때 당시도 군대생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꿈으로 나타나곤 했었어요. 군대 한 번 갔다 오면 10년 정도 꿈에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이런 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군복모양에 문자를 결합해서 작업의 형태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 작업은 시리즈로 계속 연결되지 않고 단편적으로 끝났습니다.

유승덕: 군대생활을 테마로 했던 작업과 달리 ‘자취의 현대사’라는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의 시리즈물 같은데 본인 자신이 경험한 자취 생활에 대한 기록이 이 작업의 모토가 되었겠네요.

권 승찬: 제가 그동안 주거공간에 대한 작업을 계속 해왔거든요. 공간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해석을 작업으로 풀어 나간 거죠. 이 작업 같은 경우는 1년 정도 준비를 했던 작업 입니다. 새벽이나 저녁에 집에 들어가 보면 설거지 안 된 그릇이 자취의 현대사에서 보여주는 작품처럼 싱크대에 쌓여 있어요. 오랜 자취 생활에 지쳐 1주일에 한두 번에 몰아서 설거지를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작업에 나오는 그릇이 신학철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작업을 제 방식대로 작품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하다 지금 형태의 작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승덕: 위의 작업들은 시트지 커팅으로 한 작업인가요?

권승찬: 예 그렇죠. 기본적으로 시트지에 프린팅을 하거나 커팅을 하는 작업이지요.

유 승덕: 유리창에 설치된 이 작품을 보면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그릇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자취방을 벗어나 공적인 공간인 백화점의 유리창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외부와 내부 두 곳에서 다 관찰되는 쌍방향성의 장소에 설치되면서 공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유발시키는군요. 특별히 이러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한 의도를 듣고 싶습니다.

권 승찬: 이것은 처음부터 공공장소에 설치를 할 목적으로 구상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공건물이나 백화점 등의 장소에서 도시풍경이 내다보이는 공간을 찾았구요. 실제 설치를 하고보니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 작업은 시각적으로 별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도 안에서 밖을 볼 때 제 의도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 작업은 전에 다른 곳에도 설치를 했지만, 사실상 설치는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나중에 설치를 하게 되면 높은 빌딩 안에서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설치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승덕: 이 작품뿐만 아니라 권승찬씨의 다른 작업에서도 텍스트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텍스트와 설치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권 승찬: 제가 초등학교 때 글을 잘 못 읽었습니다. 언어습득 능력이 굉장히 느렸던 것 같아요. 지금도 언어구사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요. 이 원활하지 못했던 언어구사 능력이 작품을 통해서 간결한 텍스트로 관객과 소통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이것도 아마 저의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지가 지시하는 것을 다시 중복해서 텍스트가 지시하는 식의 전략적 방법일 수도 있고요.

유 승덕: 최근 권승찬씨의 작업 중에 흥미로운 부분은 기존까지 해왔던 것들은 시각을 통해서 뭔가 소통하는 전통적인 미술의 맥락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업들이었는데, ‘라디오 방송국’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거든요. 동시대 미술이 영역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미술작가가 라디오 방송국을 한다고 해도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게 지금의 동시대 미술의 현실이죠. 이것 역시 전에 하셨던 문자작업처럼 언어를 매개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 했다고 보입니다. 그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전에 했던 작업과 같은 맥락으로 읽힐 수도 있겠네요. 그럼 라디오 방송국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서 의도하고자 하는 것들을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권 승찬: 이 작업이 제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공공미술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작업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저와 가까운 선생님 한분이 라디오 방송국을 제안하셨고 저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디오 방송을 진행해본 경험이 전무했었고, 방송장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까지 모든 어려움으로 다가왔어요. 결국 공공미술이라는 것이 대중, 특히 프로젝트가 진행될 대상 지역의 주민들과의 소통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라디오라는 매체는 모든 사람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라디오를 통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였어요. 대상지역이 선정되고 현장에서 방송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주민들이나 관공서에서도 자신들에게 모종의 피해가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 상당히 경계합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진행되다보면 대다수의 주민들과 친숙한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이런 점이 라디오 방송이 가지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유승덕: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것으로 구성이 되어 있나요?

권 승찬: 방송 프로그램은 저희들이 나름대로 짜 놓은 원칙에 있었는데요,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과감히 판을 접자는 것이었어요. 프로그램의 시작은 지역주민의 섭외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지역에서 나름 잘 알려진 각계분야의 전문가, 예를 들어 세탁소를 오래 운영하신 분을 섭외해서 ‘세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든지 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방송은 주민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작가, 공공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 등 지역민이 아닌 타 지역 사람과의 인터뷰도 한 축을 이룹니다. 처음에는 주로 토론 형식이나 인터뷰 형태로 이끌어 가다가 주민들의 노래자랑과 장기자랑도 곁들여 진행했었습니다.

유 승덕: 라디오 방송국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마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아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다른 작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거라 봅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권 승찬: 저는 광주를 벗어나 생활해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저에게 상당히 큰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어떤 형식으로든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작업하면서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학교시절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작업을 하면서 작업에 대한 어떠한 금기 조항이나 불필요한 방향제시를 강요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그게 오히려 저에게 생소하게 느껴졌어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외국작가와 직접 만날 기회는 비엔날레에 가서 설치요원으로 있으면서 잠시 경험을 한 것이 전부였는데, 이것은 당시 제가 작가로 그곳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사정이 사뭇 달랐어요. 사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언어 문제로 다른 작가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걱정을 좀 했어요. 물론 작가들은 작업을 통해서 소통이 된다고들 얘기하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꼭 언어로만 사람이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듭니다.

유승덕: 이곳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앞으로의 작가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계획과 방향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권 승찬: 지금까지의 제 작업은 많은 부분이 공간성에 지배를 전적으로 받아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게 좀 즉흥적인 면이 많이 있었구요. 라디오 방송도 마찬가지고 구 도청에서의 전시도 마찬가지고……. 현재로는 앞으로의 명확한 작업 계획이 사실상 세워지지 않은 상황 입니다. 만일 라디오 방송국을 지속한다면 365일 지속적으로 전파를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인터넷 방송 구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계획이 실현 될지 아닐지는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유승덕: 아침부터 인터뷰에 응해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좋은 활동 지속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소: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38번길 7(구동 12) | 대표번호:062-000-0000 | FAX:062-670-7929
Copyright(c)2016 By GJMA, ALL Right Reserved